2026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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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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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초, 그리스도의 탄생, 1308~1311년, 패널에 템페라, 43.5x44.5cm, 국립미술관, 미국 워싱턴 D.C.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성령만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와 동반할 말씀도 남기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위로가 교회를 통해서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도 주어진다고 합니다.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로마 15,4)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이래 홀로 버려두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 백성의 역사에 개입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믿는 이들을 찾아오신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위로하시며, 지탱해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가 살아갈 희망을 줍니다. 히브리서는 이 희망을 우리가 거센 파도에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더라도 자포자기하지 않게 해주는 ‘영혼의 닻’(히브 6,19)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성경은 말씀에서 희망을 얻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족의 약탈이 두려워 숨어서 추수하던 힘 없는 가문 출신의 젊은 기드온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맞서 싸울 희망을 품게 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이 말씀입니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 6,14)

위로에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말씀은 단연코 시편입니다.

사람이 평소 살아오면서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큰 고통을 겪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고통에 말을 빼앗겼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게 됩니다. 이럴 때 도와주는 말씀이 바로 시편입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당신 계명을 기억하며 주님,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시편119,52)
그렇습니다. 신앙의 전통 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시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 위로를 청하고 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저자와 함께 소리 높여 부르짖습니다.

“제 눈이 당신 말씀을 기다리다 지쳐 제가 아룁니다. 언제 저를 위로하시렵니까?”(시편 119,82)

혹시 이 말씀이 거칠다 생각된다면, 다음의 아름다운 말씀도 있습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시편 42,2-3)

그런데 시편보다 더 큰 위로의 힘을 가진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말씀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특히 자비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가장 큰 위로를 줍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이 위로받을 수도 있지만, 말씀으로 다른 형제자매를 위로할 수도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어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2테
살 2,16-17)

지금까지 성경이 말하는 위로,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자비한 주인 앞에 서서 전전긍긍하는 종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비탄과 고뇌에 빠진 당신 백성을 염려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십니다. 당신 아드님을 보내주시기까지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위로받습니다. 실의에 빠져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뵙고 ‘라뿌니’(요한 20,16)라며 기쁨의 환성을 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에도 하느님의 위로는 멈추지 않습니다. 위로자 성령께서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내적 기쁨을 줍니다. 물론 세상 마지막까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위로의 말씀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는 거래 관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우리의 노력으로 값을 치름으로써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위로는 우리 아버지신 하느님께서 자녀들의 행복을 바라시기에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께 받은 위로를 혼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그 위로가 절실한 다른 이들과도 함께 나눠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 맞는 도리 아니겠는지요.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아마추어미술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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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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