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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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선 평화칼럼] 시대의 잔상, 오늘의 학교

조재선 베드로(서울 노곡중학교 교사·팍스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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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서 「이오덕 일기」를 빌려 읽고 있다. 1962년부터 2003년까지 쓴 일기인데 무려 다섯 권이나 된다. 시골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오덕 선생님은 농촌 아이들의 시를 엮어 「일하는 아이들」을 펴냈었다. 중학교 시절 교보문고에 앉아 그 책을 읽었다. 가난한 벽촌의 아이들이 쓴 시들이 너무 진심 어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려 마음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책 앞머리에는 교장이 석탄과 장작을 팔아먹어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벌벌 떠는 이야기가 나온다. 선생님들이 가정 방문을 다니며 학부모들에게 담배나 현금을 ‘선물’로 받는 장면도 나온다. 육성회비는 재적생 중 일정 비율 이상만 걷고 더 걷지 않아도 되는데, 돈을 낼 형편이 없는 집 아이들까지 채근해 육성회비를 받아내는 선생님들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까 봐 이미 전출한 학생의 서류를 작성해주지 않으려는 내용도 나온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참지 못하고 격한 어조로 분노를 쏟아낸다. 교사들이 이렇게 지내면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학부모가 됐을 때, 선생님들을 믿지 못해 후배 선생님들이 큰 화를 입게 될 거라는 예언 아닌 예언까지 덧붙여 두었다.

갈색 봉투에 매달 육성회비 500원을 넣어 학교에 가져갔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돈을 학교에 가져가면 봉투 바깥에 일자를 적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엄마는 매달 내야 할 육성회비를 몰아서 몇 달 치를 내주었는데, 그래서 매달 선생님이 육성회비 얘기를 꺼낼 때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이오덕 일기」의 중반에는 1986년과 1987년 교육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상세히 묘사돼 있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을 쫓아 합정동 마리스타 수도원 별도 건물에 있던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사무실에도 여러 번 갔었다. 책에 언급된 유상덕 선생님이 연행됐을 때 사무실에 매일 나와 계셨던 사모님 모습도 기억난다. 성내운 교수님이 집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시 낭송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긴 시도 멈춤 없이 한 번에 낭송했는데, 중요한 부분은 여러 번 반복해 낭송하셨다. 선생님들은 모임 때마다 고사 비슷한 것을 지내고, 떡과 술을 나눴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굿판처럼 보였다.

사람의 인식은 잔상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기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물과 사태를 판단한다. 예컨대 많은 이가 따뜻하고 인정 어린 선생님들보다는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고, 운동장에서 선착순을 시키며, 촌지를 받고 학생을 차별하는 교사들의 잔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시대의 시계추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갔다. 지금의 학교는 더 이상 폭압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학교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면서도, 기억 저 끝에 남은 학대의 생채기를 품은 채 적대감과 의심의 눈초리로 학교를 바라본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청년기를 보낸 이들이 우리나라 인구 구성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생운동 세대인 우리는 이제 50대에서 60대를 넘어섰다. 우리는 20대에 지녔던 독재와 억압의 잔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잔상이 현실 인식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공정한 해석을 방해하기도 한다.

물론 앞 시대를 살았던 기억이 없다면 이해의 틀 자체가 사라지기에 하나의 기준점으로 역사를 회상하는 것은 마땅하다. 아픈 시대를 극복하려던 순수한 열정과 희생의 고귀한 유산을 간직해야 한다. 하지만 폭압의 시대가 남긴 옛 잔상 때문에 새로운 사태를 타당하게 가늠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염려하면서, 옛것과 새것을 조심스레 견주어볼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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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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