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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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선의 평화칼럼] 그림자에서 사람으로

조재선(베드로, 서울 노곡중학교 교사)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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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방학은 인도에서 보냈다. 그해 가을 콜카타에서 열리는, 떼제 공동체 젊은이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인도 동북부의 여러 성당과 교회를 다니면서 짧은 기도 모임과 나눔을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 어떤 곳은 당국의 허가가 필요했다. 산악 지대에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세력이 있었고, 인도 정부는 배후에 미얀마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있다고 의심했다. 교구청과 교우들의 도움으로 허가증은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소수 민족 가운데 제법 동양인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한 달여 간 그곳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화려하게 장식된 트럭들, 빗속에서 바윗돌을 정으로 으깨는 어린이와 여자들, 툭하면 길을 가로막는 소와 염소 무리, 외국인을 처음 본다면서 몰려든 꼬마 아이들, 십 대 초반의 소신학교 신학생들과 수녀원 청원자들, 평생 비틀넛을 씹어 이가 빨갛게 물든 소탈한 차림의 사제들을 만났다.

일정을 마치고 콜카타로 돌아왔을 때, 원래 묵었던 예수회 수도원에는 빈방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라는 수도회에서 빈방을 내줘 마지막 날 밤을 거기서 묵게 됐다. 그 방은 원장 신부 방이었다. 미국 출신인 신부가 급하게 본국에 갈 일이 생겨 마침 비어있었다. 원장 신부 방이라지만 에어컨도 없고, 변기는 뚜껑이 없고, 욕실은 배수가 되지 않았다.

수도원에는 오리사 출신의 젊은 수사 두 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다음 날 마닐라로 유학길에 오른다고 했다. 둘 다 비행기도 처음 타보고 외국도 처음이라고 했다. 부원장 신부가 내 항공편을 물어보길래 타이항공이라고 했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좋아했다. 수사들도 타이항공으로 출국해 방콕에서 마닐라행으로 갈아타는데, 환승 게이트까지만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부원장 신부는 무척 안심이 된다면서 좋아했다.

두 수사는 번갈아 가면서 오리사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했다. 한 사람은 통화하면서 흐느껴 울었다. 까닭을 물으니, 아주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이번에 유학을 가면 수년 동안 돌아올 수 없기에 영영 못 보는 거 아니냐며 우셔서 따라 울었다고 했다. 그날 밤 두 수사는 긴장 때문인지 번갈아 가면서 여러 차례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음 날 앞집 수녀들이 여럿 몰려와 승용차에 같이 올라탔다. 공항까지 가는 길에 수녀들은 쉴 새 없이 웃으셨다. 체크인 수속 때 항공사 직원에게 두 수사와 함께 앉게 해달라고 했다. 비행 내내 두 사람은 말없이 창밖을 쳐다봤다. 방콕 공항에서 두 분이 제대로 마닐라행 비행기를 타는지 지켜보고 나는 나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 주에 인도 오리사에 큰 홍수가 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두 수사는 마닐라에 있었겠지만, 그 가족들은 모두 오리사에 있는데 괜찮을까 싶었다.

우리 교회는 내년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가 서울을 찾는다. 잘 준비해 치러야 하는 행사다. 기대·우려·비판·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훌륭하게 잘해낼 수도 있고, 또 부족한 점이 많은 채 치러질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후로 서로에게 각자의 고향은 더 이상 지도 위의 한 지점이나 이방인의 도시가 아닐 것이다. 인격적 만남이 사람들의 관념에 영혼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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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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