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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다

[월간 꿈 CUM] |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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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아노 십자가. 이 십자가는 원래 아씨시 다미아노 성당에 있었는데, 현재 글라라 성당으로 옮겨져 있다. 프란치스코는 이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평행이론.(平行理論, parallel life)

서로 다른 시대나 맥락에서 유사한 패턴 혹은 운명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성 프란치스코와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 평행이론의 대표적 사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5월 18일 성령강림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제직에 입문하기 전) 나는 1953년 9월 21일 우연히 한 성당을 지나쳤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 고해성사를 본 후 나는 변화를 느꼈습니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목소리 혹은 부르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일이 800년 전 아씨시에서 이미 일어났다. 1205년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성당 안에서 자신을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성당에 들어갔다. 당시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다미아노 성당은 이곳저곳 허물어져 있었고, 성당 내부를 밝힐 기름도 없었다. 그 어두운 곳에서 프란치스코가 무릎을 꿇었다. 그때, 다미아노 십자가 예수가 프란치스코에게 말했다. 예수와의 대화라니!

“네가 지금 보는 대로 내 집은 파괴되고 있다. 무너져가는 내 집을 수리해 다오.” (Francisce, vade, repara domum meam, quae, ut cernis, tota destruitur)

이는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말이었지만, 당시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성당 수리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성 다미아노 성당



신비한 음성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즉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본당 사제에게 줬다. 하지만 성당 수리비로는 턱없이 적은 액수.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가게로 달려갔다. 다미아노 성당은 산 아래에 있고, 아버지 포목점은 아씨시 언덕 정상 지점에 있다. 최근 아씨시에 갔을 때 다미아노 성당에서 아씨시 중심부까지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언덕길을 프란치스코는 달려서 갔다. 가게에 도착한 프란치스코는 비싼 포목들을 꺼내 내다 팔았다. 그리고 그 돈을 모두 성당 신부에게 전달했다.

집에서 난리가 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아들을 집 골방에 쇠사슬로 묶어 가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 편. 아버지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가 아들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화난 아버지는 시 당국과 교회에 아들을 고발했다. 아들의 상속권을 무효화하기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부모 자식의 연을 끊자는 얘기다. 아버지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자칫하면 아들 때문에 평생 모은 재산을 통째로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발장이 접수되자 당시 아씨시의 귀도 주교는 프란치스코를 소환했다. 주교는 프란치스코에게 아직도 남은 돈이 있다면 모두 아버지에게 돌려줄 것을 권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도와줄 것이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이때 그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다. 프란치스코가 벌떡 일어나 옷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그는 알몸이 됐다. 주머니에 있던 돈도 모두 꺼내 벗어 놓은 옷 위에 놓았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아버지의 돈은 아버지께 돌려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저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귀도 주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프란치스코의 몸을 감싸주었다. 프란치스코가 알몸이 된 것은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행동이다. 그 포기의 알몸을 주교가 망토로 감쌌다. 프란치스코는 이제 세속의 옷이 아닌, 주교의 망토를 입었다. 교회의 사람이 된 것이다.

고행이 시작됐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생존을 위해 프란치스코는 구걸을 해야 했다. 다미아노 성당 수리를 위해 직접 돌을 등에 져 나르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부잣집 도련님이 며칠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의 ‘마음과 몸’(靈肉)은 이미 세속을 떠나 천상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극도의 가난을 실천하며 하느님을 따르는 프란치스코의 흔들리지 않는 삶은 차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이러한 삶은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이었다. 몇몇 사람이 프란치스코와 같은 삶을 살겠다며 모여들었다. 그들은 함께 살기를 원했고,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프란치스코는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에서 성 마티아 축일(1208년 2월 24일, 혹은 성 루카 축일인 10월 12일) 미사 때 사도들의 파견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고 이를 자신의 성소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회개 생활 지향점을 ‘세상에서 이방인과 순교자로 살며 복음을 증거한다’로 채널 고정시킨 것이다. 이후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따르는 두 친구(상인이었던 퀸타발레의 베드나르도, 법학자 피에트로 카타니)와 함께 성 니콜로 성당에서 복음 말씀을 세 번 펼쳐 읽는다. 이때 프란치스코에게 내린 계시 말씀은 다음과 같다.

▲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나를 따라라.”(마태 19,21)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루카 9,3)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4-35)

프란치스코 영성의 기저에는 ‘단순함’이 있다. 프란치스코는 복음 말씀이 그렇게 하라면 그대로 했다! 프란치스코와 두 친구는 계시된 복음 말씀을 자신들의 생활양식으로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순박한 성격의 에디지오가 합류해 총 4명이 되자, 이들은 복음 말씀대로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순수하고 단순한 이들의 삶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곧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사람이 12명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이렇게 인원이 늘면 문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혼자 살 때는, 혹은 마음 맞는 서너 명이 의기투합해 살 때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의견을 조율하면 됐다. 하지만 10명이 넘는 사람이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규칙이 필요했다. 프란치스코는 당시 사람들, 심지어 교황까지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로 엄격한 공동체 규칙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규칙서를 보따리에 소중히 넣은 후, 여정에 나섰다. 목적지는 로마 교황청이었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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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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