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공식적으로 창립(1784년)되기도 전, 조선의 한 명문가 선비가 보장된 미래와 명예를 뒤로 하고 홀로 하느님 안에서 ‘진리’를 찾아 나섰다. 당시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이름 없는 산중에 은거하며 천주교 신앙을 고요함 속에 실천했다.
그가 바로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修德者)로 불리는 농은(?隱)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이다. 선생과 그 후손들의 안식처인 안동교구 우곡성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에게 신앙의 맑은 샘물을 건네주는 영적 요람으로 빛나고 있다. 자발적으로 수용한 신앙을 실천한 신앙 선조의 고결함과 피와 땀이 깃들인 우곡성지를 찾았다.
칠극, 삶으로 몸소 증거한 신앙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愚谷里),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중턱까지 걸어가니 해발 1206m에 달하는 문수산 자락에 안긴 우곡성지 입구가 보인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봄의 햇살과 푸른 하늘 아래, 저 멀리 십자가와 홍유한 선생의 동상이 순례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말끔하게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을 한 선생의 동상을 자세히 보니 책 한 권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있다. 바로 그의 평생 지침서였던 「칠극(七克)」이다. 「칠극」은 스페인 출신 예수회 회원 판토하 신부가 쓴 교리서다.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 등 ‘칠죄종’을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에 닿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홍유한 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인 풍산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16세 나이에 당시 실학의 거성이었던 성호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서학(西學)을 접하고 인간 영혼의 구원을 밝히는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했다. 1750년경부터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에게는 세례를 줄 신부도, 신앙을 함께할 신자 공동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세속의 일을 끊고 오직 기도에 전념했고, 육욕을 멀리하며 금식과 절제를 생활화했다.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규율한 그의 수덕생활은 충남 예산, 경북 영주를 거쳐 마지막 은거지인 우곡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겸손과 절제, 소박한 신앙의 향기 곳곳에
우곡성지 순례 여정의 시작은 ‘칠극의 길’이다. 안동교구는 1993년 홍유한 선생의 묘를 발견해 순차적으로 성지를 개발했고, 2015년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리기 위해 칠극의 길을 조성했다. 잔잔히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따라 고즈넉하게 마련된 길 위에는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이기는 덕목들이 바위 위에 새겨져 있다. 제1극 ‘복오(伏傲, 교만을 억누르다)’에서부터 제7극 ‘책태(策怠, 게으름을 채찍질하다)’에 이르기까지 선생이 스스로를 경계하며 닦았을 겸손과 절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곡성지 담당 윤성규(바오로) 신부는 “홍유한 선생은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분”이라며 “당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대부였지만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고 철저하게 복음적인 삶을 사셨다”고 설명했다.
칠극을 묵상하며 주모경과 영광송을 바치고 걷다 보면 길의 끝자락에 ‘칠극성당’이 보인다. 화려한 장식은 없어도,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조화된 소박한 외관은 홍유한 선생의 곧고 굳은 신앙심과 평소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1995년 세워진 성당 내부는 비둘기가 날갯짓하는 모양을 묘사한 파란 스테인드글라스가 부드럽게 빛을 내며 신앙 공동체를 감싸고 있다.
성당 옆에는 한복 차림을 한 흰색 성모상이 주변의 봄꽃과 수풀 사이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자태로 순례객에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한국교회는 유교적인 문화와 가톨릭 신앙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한 역사가 있다. 선비의 절제와, 하느님의 자애로움이 만난 영성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앙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후손들이 빚은 신앙의 열매 영원히
홍유한 선생의 고귀한 신앙은 후대에 이어졌다. 그의 뜻을 이어 신앙을 증거하다 13명의 후손이 순교한 것이다. 순교한 후손 중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는 지난 1984년 한국을 사목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 됐다. 홍낙민 루카 등 5명은 2014년 한국을 사목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은 삶의 끝까지 선생의 신앙을 따랐으며 하느님 곁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칠극성당에서 다시 입구 방향으로 이동해 산기슭 쪽으로 가면 홍유한 선생 후손 순교자 13위의 가묘와 현양비가 보인다. 시복 시성된 후손들이지만, 그 유해를 찾지 못해 각 순교 터의 흙을 담아 묘를 조성했다. 비어 있는 묘이지만, 그 어떤 무덤보다도 소중하고 묵직한 신앙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묘를 지나 홍유한 선생의 묘소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속 산길에는 십자가의 길 15처가 조성돼 있다. 신앙 선조들이 예수님 수난을 묵상하고 험한 산길을 오르며 바쳤을 기도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기면 중턱에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묘소는 소박한 모습이다. 작은 봉분에 간결한 비석은 평생 숨은 구도자로 살아간 생애를 보여주는 듯하다. 높은 산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처럼, 그 누구보다도 맑은 신앙으로 예수님을 닮으려 했던 선생의 마음이 바로 이곳에 오롯이 머물고 있다.
우곡성지를 둘러 보는 순례길은 1~2시간 남짓 소요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순례자들은 수백 년 전 선조들이 평생에 걸쳐 지켜왔을 깊은 신앙과, 때로는 인간적으로 고민했을 삶의 본질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윤 신부는 “순례나 피정을 위해 성지를 찾는 분들은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고 홍유한 선생의 삶에 감동하며 자신의 삶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우곡성지 순교자 현양비에는 “우곡의 골짜기는 이곳을 찾는 신앙인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신앙의 골짜기, 거룩한 땅, 성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신앙은 단순히 ‘관성적인 믿음’이 아닌 ‘끝없이 성찰하고 실천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홍유한 선생과 그 후손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우곡성지는 고요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숲길에서 진정한 평화와 신앙의 가치를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