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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 800년 이어온 살아 있는 신앙의 유산

[프란치스코의 향기] 2.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아시시 성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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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토르토의 초라한 오두막은
프란치스코 영성이
복음적 가난과 형제적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의 작은 도시 아시시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그 밖의 프란치스칸 성지들’이란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했다. 이는 단순히 중세 건축물의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는 물리적 평가를 넘어선 결정이었다.

등재 기준 가운데 여섯 번째 항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아시시가 “작은형제회의 발상지로서, 타 종교와 신앙에 대한 평화와 관용의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신앙의 유산”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아시시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화석이 된 유적이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가 뿌린 다양한 가치가 8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역동적이고 거룩한 곳임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이 등재는 아시시의 예술적·영성적 가치가 특정 종교를 넘어 전 인류의 보편적 자산임을 선포한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이 거대한 영적 유산의 중심에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자리한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꼰벤뚜알’은 ‘공동체’ ‘수도원’이란 뜻을 내포하는 이름이며, 이는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아시시 대수도원(Sacro Convento)을 중심으로 형제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성지를 수호해 온 정체성을 대변한다. 꼰벤뚜알 작은형제들은 1230년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를 대성당으로 옮겨 모신 이래, 단 한 번도 이 거룩한 터전을 떠나지 않고 성인의 숨결을 지켜왔다. 아시시의 돌벽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기도의 향기와 대성당의 장엄한 전례는 바로 이들 꼰벤뚜알 작은형제들이 8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어온 헌신과 기도의 결실이다. 이들은 단순한 관리인을 넘어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현대의 언어로 옮기고 순례자들의 영혼에 평화의 씨앗을 심는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아시시의 성지 가운데서 대성당의 웅장함보다 앞서 마주해야 할 곳은 평원 아래의 ‘리보토르토(Rivotorto)’ 성당이다. 1209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생활 양식(원 수도규칙)」을 구두로 인준받은 직후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은 이 구불구불한 개울가에 위치한 낡은 오두막에서 첫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은 이름도, 규칙도, 거창한 수도원 건물도 갖추지 못한 채 오직 복음의 기쁨만으로 가득했던 형제회의 못자리와도 같은 장소다. 리보토르토의 생활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복음만을 실행에 옮기며 살아가려는 프란치스코의 결심이 가장 순수하게 구현된 순간이었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드는 비좁은 석조 오두막 안에서 형제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완전한 기쁨’을 노래했다.

오늘날 리보토르토 성당 내부에는 당시 형제들이 기거했던 초라한 오두막이 보존되어 있다. 거대한 성당이 이 작은 돌무더기를 보석처럼 감싸안고 있는 형상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화려한 예술로 성인을 현양하면서도, 그 핵심에는 가장 가난했던 ‘작은형제들’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

순례자들은 리보토르토의 낮은 문을 통해 몸을 굽히며, 성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의 겸손이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생활양식이었음을 체험한다. 결국, 아시시는 도시 전체가 돌과 기도로 쓰인 하나의 거대한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문학작품이다. 꼰벤뚜알 작은형제들은 이 전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도록 정성껏 갈무리해 온 기록자들이다. 리보토르토의 가난에서 시작된 이 전기의 서막은 이제 아시시 언덕 위의 대성당으로 이어지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평화의 길을 밝히는 위대한 고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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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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