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기본권과 자연환경, 문화의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에 신자 4000여 명의 신앙 터전인 성당과 주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 마을을 철거하고,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종교의 자유, 민주주의, 환경, 문화’라는 21세기의 시대 정신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서울대교구 우면동본당(주임 백운철 스테파노 신부) 신자들과 송동마을·식유촌 주민 200여 명은 10월 1일 서울 원지동 서초종합체육관 일대와 성당에서 열린 ‘서리풀 2지구의 우면동성당과 마을 존치를 위한 성명서 발표 및 순례 기도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행사는 국토교통부와 서울특별시가 2024년 11월 5일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 중 ‘서리풀 1, 2지구 공공주택 공급 계획’에 성당과 마을 부지가 포함된 것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성명서에서 본당과 마을 측은 서리풀 2지구의 개발 계획이 종교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지역 환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본당과 마을은 “이번 개발 계획은 신자의 종교 생활을 침해해 헌법 제20조 1항의 ‘종교의 자유’에 위배되는 방안”이라며 “1972년 개발제한구역, 2009년 취락지구로 지정된 마을은 각종 행위 제한을 받으면서도 터전을 지켜온 집성촌으로, 주민들의 주거권과 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선언한 만큼 이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개발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교구 12지구 소속 11개 본당과 수도회의 성직자·수도자·신자 9400여 명도 성명서에 서명하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서울특별시의회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시의회는 3월 7일 본당과 마을 측의 청원을 검토해 ▲주민 의사 청취 미흡 ▲재산권 침해 가능성 ▲전통 훼손 우려 ▲주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전체 의원 70명 중 69명의 찬성으로 지구 존치 청원을 가결한 바 있다.
성명서 발표에 앞서 신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성당에 모여 백운철 신부 주례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환경영향평가 설명회가 열리는 서초종합체육관까지 걸어가며 묵주기도를 봉헌하는 순례 기도회를 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LH에 의견을 전달했다.
백 신부는 “국토교통부의 서리풀 2지구 강제 수용 계획은 북이스라엘의 임금 아합이 자신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궁 옆에 있던 나봇의 포도원을 넘기라고 요구한 성경 속 이야기와 유사하다”며 “이제는 공공성을 앞세워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개발 독재 관행을 중단하고,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공공개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본당과 마을 측은 대통령실과 서울시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서리풀 2지구 내 환경평가 1·2등급 지역 보존 문제를 공론화하며 환경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