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인간 능력의 한계를 빠르게 넘어서려는 시대, 교회 안팎에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이 4월 18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에서 개최한 ‘AI 시대의 트랜스휴머니즘’ 학술대회에서는, 인간 능력의 향상과 생명 연장을 약속하는 기술 발전이 자칫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트랜스휴머니즘은 AI와 유전자 편집 등 첨단기술로 인간의 신체와 지능, 수명까지 향상할 수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지만, 인간을 기술적으로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명윤리 논쟁도 함께 낳고 있다.
발표자들은 트랜스휴머니즘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인간의 유한성과 취약성을 제거 대상으로만 볼 때 인간다움의 본질도 함께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발표에 나선 슈테판 캄포스키 교수(로마 혼인과 가정을 위한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신학대학원)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제시하는 자기 극복의 관점이 인간의 진정한 자기실현과 어떻게 다른지 조명했다.
캄포스키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의 형태와 한계를 넘어 지적 생명체의 진화를 지속하는 것을 추구하는 철학”이라며 “인간이 오직 자신의 생명과 건강의 보존, 연장에만 몰두하는 트랜스휴머니즘적 욕망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유한성과 취약성, 의존성을 끌어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초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간과 기술의 경계에서 진화하고 있는 AI’를 주제로 발표한 이상국 교수(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는 AI 기술의 급격한 진화 앞에서 멈춰 서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인간의 속도를 앞지를 때,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이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기술의 진화는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며 우리를 어디까지 ‘인간’으로 정의할 것인지, 어떻게 생명 가치를 지켜낼 것인지 절박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AI가 인간의 욕망을 증폭하는 도구가 아닌 삶의 안정과 인간의 평정을 우선하는 ‘소멸형 인공지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신체를 거치지 않고 뇌와 외부 기기 사이에서 소통 경로를 구축하는 기술)와 관련해 윤리적 대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손정우 교수(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과학교실)는 “지금까지 프라이버시와 보안, 기술 접근성의 공정성, 인간의 정체성과 인격에 미치는 영향 등 윤리 쟁점이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며 “윤리적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소비자와 시민사회의 인식 제고, 학제 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문헌 「인류여, 어디로 가는가?」(Quo Vadis, humanitas?)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헌은 기술 문명이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며, 기술의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기준으로 발전 방향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