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병실. 왼쪽 팔에 깁스를 한 채 병상에 누워있는 12살 페루 소녀 하이디 로리아니(Jaidy Lori any)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두 남자가 번갈아가며 웃는다.
한 사람은 하이디의 아버지, 다른 한 명은 페루에서 2년째 사목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 최종환(의정부교구) 신부다. 최 신부는 골육종을 앓고 있는 하이디의 치료를 위해 지난 6월 21일 하이디와 아버지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큰일을 했다고 하지만, 페이스북 친구(페친)들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하이디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린 게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은 온라인에서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 사랑이 결국 시골 마을의 한 어린아이 삶에 희망을 불어넣었어요."
최 신부는 "이 예쁜 아이가 팔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기적처럼 이뤄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 페루에서 사목하고 있는 최종환 신부(오른쪽)가 골육종을 앓고 있는 하이디의 치료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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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디 사연이 실린 페이스북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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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렇다. 사탕수수 농사를 하는 밭 언저리 조그마한 항구에서 페루인 사목을 하는 최 신부는 6월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우리 본당의 신심 깊은 예쁜 아이가 악성종양으로 팔을 잘라야 한다. 몇 달 전 학교 계단에서 넘어져 어깨가 아프다 했었는데, 지난주 아이 아빠가 다니는 공장의 배려로 리마의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이 아이에게 삶의 절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 절단하는 방법밖에 없는지?"
500명이 넘는 페친들은 팔에 깁스를 한 하이디 사진과 함께 사연을 접했고, 기도와 응원 메시지가 댓글로 쏟아졌다. 페친들이 `좋아요`를 클릭하면서 하이디 사연은 전파를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해외의료선교를 담당하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오승민 교수가 최 신부 글을 보고 연락을 취해왔다. 최 신부는 영어가 가능한 의대생을 수소문해 영어로 된 의사 소견서와 엑스레이 사진을 먼저 보냈고, 팔을 절단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으니 이른 시일 내에 입국하라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최 신부는 여권과 비자 발급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최 신부는 한국으로 오기 전 주일미사 때 본당 신자들에게 몇 달 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본당 신자들은 한국 병원과 한국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웃 사랑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최 신부는 글을 올린 지 열흘 만에 하이디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항공료와 체류비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수술 및 의료비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해 조직검사를 받은 하이디는 8개월 동안 머물면서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하기로 했다.
병원에는 벌써 많은 이들이 병문안을 왔다. 온라인에서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좋아요`를 클릭했던 많은 페친들이 과일과 과자를 들고 하이디 앞에 나타났다. 한국에 있는 페루 수녀를 비롯해 지인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 신부는 하이디가 치료받는 모습을 찍어 페이스북에 부지런히 올리고 있다. 페루에 있는 신자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최 신부는 "답답한 마음에 올린 글이 페이스북을 통해 동창ㆍ후배 신부와 지인들에게 전해지고, 또 전해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까지 연결된 것에 하느님께 감사하다"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순기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이디와 가족, 페루 신자들 마음에 새겨진 고마운 마음은 오랜 시간 동안 번져나갈 것"이라며 "이게 진짜 선교가 아니겠냐"고 흐뭇해했다.
하이디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을 선물한 가톨릭중앙의료원장 이동익 신부는 "가톨릭 의료기관으로서 온 인류의 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이라며 "세계 곳곳에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열심히 찾아내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이디는 "처음 도착했을 때는 가족들과 떨어져 슬퍼서 많이 울었다"면서 "건강을 되찾아 페루로 즐겁게 돌아가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하이디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다.
하이디 아버지 윌톤 메나(Wuilton Mena)씨는 "먼 곳에서 온 만큼 가족들이 그립지만 신앙으로 이겨내고 있다"며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