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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떻게 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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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성지순례 222 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내가 봐왔던 러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5㎞, 10㎞가 아니라 무박으로 이틀, 길게는 사흘간 달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정이었다. 내가 뛰는 것도 아닌데 괜한 긴장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에 모인 100여 명의 선수들은 달랐다. 긴장한 기색은커녕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가 힘을 얻는 느낌이었다.


6명의 지인과 함께 참가한 한 그룹이 눈에 띄었다. 그중 가장 해맑게 웃고 있던 참가자에게 물었다. “긴장되지는 않나요. 왜 이렇게까지 뛰시나요. 이번 대회 목표는 무엇인가요.” 구체적이고 거창한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겸손히 뛰겠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고 썼다. 고통은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어쩌면 ‘겸손’과 닿아 있다. 고통을 억지로 이겨내려 하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겸손히 뛰겠다’는 참가자의 말에는, 인생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오랜 깨달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가 완주했는지, 중도에 멈췄는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 인생에도 수많은 아픔과 슬픔이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떤 자세로 마주하고, 어떻게 다시 나아갈 것인가다. 우리는 각자 여러 이유로 달린다. 그 길 위에서 언젠가는 그 참가자처럼 삶의 자세를 배우고, 언제 멈추고 쉬어야 하는지도 아는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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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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