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사랑은 발을 씻어 주는 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클라라가 만삭이었을 때 일입니다. 엘리사벳이 태어날 즈음, 클라라는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신발 가방을 따로 챙겨야 했습니다. 두 발은 무거워진 몸을 지탱하기가 힘겨워 보였습니다. 아침에는 괜찮았던 발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어서 퇴근할 무렵이면 출근할 때 신었던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퉁퉁 부은 발이 들어갈 만한 큰 사이즈의 신발을 넣은 신발 가방은 만삭 임산부의 필수 지참물이 되었습니다.


직장 동료가 말린 쑥을 챙겨주었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넣고 불린 다음 발을 담그면 부기가 가라앉을 거라고 하면서요. 집으로 돌아와 쑥물에 족욕을 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를 버텨 준 두 발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양손으로 구석구석 주물러 주었습니다.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도, 발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고 온몸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좋은 곳에 갈 때 가족이 떠오르는 것처럼 족욕의 기쁨도 가족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와 카타리나를 불러 식탁 의자에 앉혔습니다. 쑥물이 담긴 대야 두 개를 두 사람 발 앞에 각각 두었습니다. 두 발을 담그라고 하자, 두 사람은 클라라를 빤히 쳐다볼 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발이 더럽고 냄새도 날 거라며 발을 내보이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클라라는 곧 자신의 발을 씻은 그 방식대로 두 사람의 발을 담그고 천천히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날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세족식을 한 날입니다. 만삭의 몸으로 두 사람의 발을 씻어 주던 그날의 장면이 생생합니다. 하루 종일 신사용 검정 구두 안에 갇혀 건장한 남성의 체중을 견디며 분주하게 움직였을 큰 발과 엄마 아빠가 일하는 사이 다섯 살의 세상을 누볐을 작은 발. 클라라는 그 발들을 씻으면서 그들이 보낸 하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세족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클라라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랑은 ‘발을 씻어 주는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언젠가 친한 친구의 발에 통풍성 관절염으로 심한 부종이 생긴 걸 본 적 있습니다. 그의 발을 씻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의 발을 씻어 주는 대신, 그의 아픔을 목격하며 얼마만큼 아픈지 어쩌다 아프게 되었는지 도울 일이 있는지 그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게 발을 씻어 주는 일의 의미는 아픔을 공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지치고 고단했을 발을 씻어 주는 시간, 온몸으로 사랑이 전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서로의 발을 씻어 줍니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하루의 무게가 물 안에 풀어지고, 손끝으로 전해진 온기가 다시 몸으로 스며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갑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4-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4. 28

시편 119장 64절
주님, 당신의 자애가 땅에 가득합니다. 당신의 법령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