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탄절의 와인 뱅쇼와 셰리 아포스톨레
▲ 감미로운 천국의 향을 풍기는 아포스톨레
이토록 빨리 한 해가 가다니~! 벌써 성탄이다. 대림을 지내며 고대해 온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 땅에 도래하는 새로운 희망을 알린다. 그런데 손을 호호 불며 구유를 경배하면서 나는 ‘성탄이 왜 이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 있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이는 마치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오는 것처럼 구시대의 잔재가 추운 겨울을 넘기지 못하게 하여 새 희망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결국 칼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 없이 도려내는 엄동설한에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이 있는 것이다. 경제도 좋지 않고 크리스마스 캐럴도 울려 퍼지지 않는 거리지만 새날은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추울 때면 마시는 와인이 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유럽의 대도시들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시장을 연다. 보통 유서 깊은 대성당이 있는 도시의 시청 앞이나 성당 앞 광장에서다. 구유와 성탄 나무를 꾸밀 장식품과 성탄절을 전후해 먹을 음식을 판매하는 장터다. 추운 날씨에 장을 본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는 곳은 바로 ‘뱅쇼’(Vin Chaud) 또는 ‘글루바인’(Gluehwein) 이라고 부르는 따뜻한 와인을 파는 곳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부스에서는 갖은 향신료와 과일을 넣은 와인이 끓고 있다. 계피나 정향 아니스와 같은 향신료는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분이다. 여기에 더하는 오렌지나 레몬은 향을 좋게 하고 비타민C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결국 이 둘을 넣어 와인을 끓이면 알코올이 증발해 낮은 도수의 따끈한 ‘쌍화차’가 만들어진다. 입맛에 따라 설탕을 넣어 먹으면 맛도 있다. 누구나 각자 집에서 끓여 먹을 수 있다. 와인이 굳이 고급일 필요는 전혀 없다. 1만 원짜리 저렴한 와인을 사자. 냄비에 넣고 오렌지 1개 레몬 1개를 껍질째 썰어 넣는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향신료를 넣고 30분 정도 약 50℃로 뭉근히 끓인다. 흑설탕을 100g 정도 넣어 주면 누구나 좋아하는 와인 쌍화차가 만들어진다.
날씨가 추운 지역에서는 와인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다면 따뜻한 남부 지중해 지역에서는 성탄절에 잘 숙성된 스위트 와인을 마신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헤레스(Jerez 영어명 셰리 Sherry)라는 지역에서는 400년 전부터 특별한 와인을 생산해 오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데 일부러 와인을 꽉 채우지 않아 공간을 남겨둔다. 이렇게 하면 와인이 천천히 산화가 돼 호두나 헤이즐넛 같은 견과류의 오묘한 향이 배게 된다. 맛은 드라이한데 향은 구수한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당도가 높은 감미로운 품종으로 만든 다른 와인의 원액을 20 정도 넣는다. 이렇게 하면 와인이 적당히 달콤해진다. 여기에 고농도 순수 브랜디를 넣으면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 20도에 육박한다. 이 와인을 십년 이상 오랫동안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호두나 헤이즐넛과 같은 구수한 너트류의 향과 곶감이나 말린 대추와 같은 풍미가 더해진다.
이 계통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은 ‘곤잘레스 바야스’라고 하는 셰리 생산회사가 만드는 30년 숙성시킨 ‘아포스톨레’ 라는 와인이다. 30년 가까이 숙성시키면 진했던 붉은 색상은 어느덧 갈색으로 변해 연한 호박색 기운이 감돈다. 향은 달콤한 과일향과 향신료 복합적인 숙성향이 풍긴다. 캐러멜과 바닐라 향이 은은히 풍기는 감미로운 천국의 향이다. 유럽의 가톨릭 가정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이 고급 셰리를 아기의 입술에 찍어 맛보여 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숙성된 삶에 대한 매력을 맛보여 주는 것일까? 물론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는 이 와인이 미처 발명되기 전이니 하늘에서 못내 아쉬워하실지도 모른다.
스테파노 손진호와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