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안정적인 직장 버리고 나눔과 봉사의 길 선택
‘호스피스는 삶의 끝 잘 마무리하는 곳’ 인식 개선 소망
“어머니, 잘 계셨어? 내일 또 봐요.”
서울 시흥동 소재 전·진·상의원을 사반세기가량 지켜온 최혜영(실비아) 사회복지사는 기자가 찾아간 9월 23일에도 환자들을 반갑게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씨는 25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가정·입원형 호스피스 병동 모두 합쳐 5000명에 이르는 환자를 받고 하늘길을 배웅했다.
최씨가 호스피스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한 건 30년 전. 공무직인 사회복지 전문요원을 그만두면서다. “남부럽지 않은 안정적인 직장을 왜 관두느냐”는 가족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는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찾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신당사회복지원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다. 최씨는 곧바로 미국에서 호스피스 사회복지사 수련을 거친 뒤 이곳 전진상의원에 둥지를 틀었다.
서울 금천구 일대는 과거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았다. 지금도 전진상의원을 중심으로 다가구·다세대 주택 등이 난립한 곳이 많다. 1975년 문을 연 전진상의원은 올해 개소 50주년을 맞았으며, 2008년 입원형 호스피스를 개원했다. 최씨는 “치료받을 여건이 안 되니 방치하다가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환자들이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특히 대형병원도 아닌 의원이 호스피스를 갖춰 운영하는 데엔 어려움도 많았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했다. 최씨는 “입원형 호스피스를 마련하면서 생각지 못한 인건비가 들기도 했고, 소수 인원으로 운영이 힘들 때도 있었다”며 “사회복지사에 대한 수가도 낮고, 환자 중엔 넉넉지 않은 분들이 많아 대학병원만큼 비용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는 “그럼에도 이곳 직원들은 ‘이 일이 곧 하느님의 일’임을 되새기며 사명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주님께서 계속 이 일을 하길 바라시면 계속 될 것’이란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다행히 후원이 끊이지 않아 복지회와 (재)바보의나눔이 버팀목이 돼줬고, 여러 곳에서 노력을 인정해 상과 상금을 수여하는 등 기적처럼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최혜영(실비아) 사회복지사는 "아내와 사별한 남편이 인형을 보내준 것이 두 트럭에 달했다. 생전 고인의 뜻을 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환자들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2~3주. 이미 숨을 거둔 뒤 구급차가 도착한 경우도 많다. 최씨는 “그때마다 감정을 억누르려 노력한다”며 “우리도 인생을 소풍 왔다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처럼 환자도 그나마 마음이 가벼워야 잘 날아갈 수 있기에, 저와 직원, 봉사자들은 울컥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이의 임종을 지켜온 만큼 기억에 남는 이들도 많다. 최씨는 “아내와 사별한 남편분이 부인이 만들어 자신에게 줬던 인형을 필요한 분들께 전달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는데, 글쎄 그 양이 두 트럭에 달했다”며 “아내가 생전 바랐던 마음을 돌아가신 후에나 나누게 돼 안타깝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또 이곳에서 신앙심이 깊은 환자, 가족과 마지막 유종의 미를 잘 거두고자 애쓰는 보호자, 매일 퇴근해 부모를 찾는 자녀들을 보며 삶의 의미를 배운다고도 덧붙였다.
최씨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길 소망했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호스피스를 단지 죽으러 가는 곳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 그랬다’고 하세요. 삶의 끝에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는 만큼 호스피스가 곧 그러한 곳이라는 인식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 올해 희년을 맞아 본지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공동기획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순례자’로 희년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맞는 희년의 의미와 희망을 되새기며 이웃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 사랑 실천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