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이전과 다른 느낌이다. 너무나도 힘들고 불편했던 여름을 보내고 겨우 숨 돌릴 수 있는 가을을 맞이했기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반가움보다는 안도감에 가깝다. 기상청 발표를 보면 올여름(6.1~8.31)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로, 1973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일 최고기온 평균은 30.7도로 가장 높았다.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서워진 여름은 지구 온난화의 결과임이 명확하다.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을은 청량하다. 높고 푸른 하늘과 색색으로 무늬 짓는 낙엽들은 일 년에 한 번뿐인 이 짧은 순간을 멋지게 장식한다. 가을은 망각의 계절이기도 하다. 어렵고 지난했던 끈적한 여름의 추억은 어느새 잊히고 환경보호의 목소리도 사라진다. 가을은 쓸쓸하다. 순간의 아름다움과 청량함이 지나면 혹독하고 황폐한 겨울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말러의 교향곡 6번 3악장 ‘Andante moderato’는 이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시리게 들려준다. 겨울의 고독과는 분명히 다른 가을의 정서를 이렇게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라사테가 지휘하는 오슬로 필하모닉의 연주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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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가을을 노래하는 음악도 있다. 차이콥스키는 그의 몇 안 되는 피아노 작품집인 ‘사계’에 추수·사냥·가을의 노래를 포함시켰다. 밝고 활기찬 추수와 사냥에 비해 가을의 노래는 쓸쓸하다. 겨울을 앞둔 불안함과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곡이다. 임윤찬이 연주한다.(가을은 24분 48초부터)
//youtu.be/Ik9mPSe28hA?si=WH6NYm5ccWdIRx3y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사계’ 역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비발디의 ‘사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기악음악의 하나가 되었지만, 작곡가가 활동했던 당시에는 그다지 인정받는 곡이 아니었다. 후대에도 토스카니니 같은 이들은 비발디의 모든 작품이 ‘사계’의 아류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천진하고 매혹적인 선율과 잘 짜인 구조, 그리고 시대를 아우르는 멋진 주제는 이 작품을 불멸의 지위에 올렸다. 비발디 ‘사계’의 정식 명칭은 ‘조화와 영감’이다. 자닌 얀센의 독특하고 활발한 연주가 인상적이다.(가을은 21분 1초부터)
//youtu.be/zzE-kVadtNw?si=ZnoNYZt_OYdW-dcu
피아졸라는 탱고음악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술집과 매춘굴에서 연주되던 퇴폐적 음악을 클래식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평균율을 표준으로 만든 바흐나 화성법의 기초를 확립한 라모의 업적과도 견줄 만한 것이다.
피아졸라의 ‘사계’는 비발디의 ‘사계’를 오마주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비발디의 ‘사계’와 탱고의 흥겹고 애절한 선율은 듣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가을에 받을 수 있는 멋진 선물이다. 레이찬이 연주한다.(가을은 7분 21초부터)
//youtu.be/gQunER8mTM8?si=ZpMCJlzh5jrx0aux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