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른호펜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성모 마리아 탄생 순례 성당. 세속화 이후 1823년부터 프란치스코회가 정착하였고, 현재 폴란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크라쿠프 관구 수도자들이 순례 사목과 림부르크 교구의 주변 10개 본당을 통합해 본당 사목을 맡고 있다. 순례 성당 남쪽에 붙은 3층 건물은 중정과 회랑을 중심으로 수도자들의 생활 공간이다.
중세 유럽을 관류하는 라인강은 단순히 교역로가 아니라 신앙의 길이었습니다. 북쪽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부터 쾰른·마인츠·빙헨을 거쳐 남쪽 스위스 바젤에 이르는 긴 강줄기는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주요 길목이었고, 때로는 예루살렘 성지로 떠나기 전 지중해 항구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쾰른대성당의 동방 박사 성해(聖骸)·트리어 대성당의 주님 성의(聖衣) 등 라인강과 지류의 여러 성지도 순례자의 목적지가 되었죠.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부 라인강 상류 계곡의 보른호펜 수도원도 그런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보른호펜 성모 마리아 탄생 순례 성당. 이 일대를 지배하던 백작과 선제후인 트리어 대주교의 분쟁에 휘말려 성당이 전부 파괴되었다가, 1435년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에 다시 봉헌했다. 1687~1691년 트리어 대주교 주도로 서쪽에 바로크 양식의 현관을 신축하고, 성당 북쪽에 통고의 성모 소성당을 새롭게 조성했다.
라인강 순례길의 성모 성당
보른호펜 순례는 이미 13세기 초에 싹을 틔웠습니다. 보른호펜은 ‘샘이 있는 농장’이라는 뜻으로 교구 기록에 따르면, 13세기 초 이미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소성당이 있었고, 담당 사제가 있던 마을이었습니다. 바실리카와 수도원의 회랑이 있었던 흔적을 볼 때, 초기에 일정 규모의 공동체인 아우구스티노회가 정착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아우구스티노회는 성 아우구스티노 규칙을 따라 사는 공동체입니다만, 같은 이름에 다른 두 전통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1256년 교황 칙서로 통합된 이후 도심에 뿌리내려 열린 사도직을 강조하는 탁발수도회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수도회입니다. 레오 14세 교황도 아우구스티노회 선교사로서 페루에서 본당 사목 경험을 쌓으셨죠.
다른 하나는 중세 초까지 사목과 공동체 생활을 병행하던 의전 사제단입니다. 성당 가대에 함께 앉아 시간 전례 등을 함께했기에 가대 사제라고도 불리는데요, 주교좌 성당의 의전 사제단은 훗날 참사회원으로 발전하지요. 10세기 클뤼니 개혁 이후 수도자들처럼 청빈한 삶을 살려는 세속 사제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게 아우구스티노회 의전 사제단입니다. 다만 교구에 속해 사목을 맡아야 했기에, 기도와 노동을 중시하던 베네딕도 규칙 대신 공동체 사랑과 일치를 중시했던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을 택해 살았지요. 이들 공동체는 교구에 속했지만, 수도회처럼 독자적으로 재정을 운영했습니다. 라인강의 포도밭은 보른호펜 공동체에 든든한 경제적 기반이 되었을 겁니다.
성모 탄생 순례 성당 주 제대(오른쪽)와 통고의 성모상을 모신 소성당(왼쪽). 13세기 초 고딕의 뼈대 위에 17세기 바로크 장식과 19세기 복원 흔적이 겹겹이 쌓인 모습으로 뾰족한 아치, 단순한 벽체, 채광을 중시한 창문 구조가 특징. 라인강 유역에서 유행하던 중세 성당 건축의 전형이다. 출처=림부르크교구
부분 대사가 수여된 성모 성지
마인츠에서 라인강을 따라 기차로 1시간쯤 달리면 캄프-보른호펜 역에 다다릅니다. 강 양쪽으로 가파른 언덕과 포도밭이 있는 마을인데, 정기유람선도 정박합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흰색 수도원 건물이 수도원과 순례 성당입니다. 현재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순례자를 맞이하고 있지요.
순례 성당은 13세기 초 고딕의 뼈대 위에 17세기 바로크 장식과 19세기 복원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뾰족한 아치, 단순한 벽체, 채광을 중시한 창문 구조가 특징으로 라인강 일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세 성당이지요.
클뤼니 개혁은 성모 신심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기도와 전례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면서 주님 탄생 예고·성모 승천 등 성모님 관련 축일이 교회 전례력에 확대됐죠. 신학적으로도 성모 마리아는 신자들을 위한 중개자로 정립되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 유럽 곳곳에 세워집니다. 일찍부터 보른호펜에 성모 소성당이 있었던 건 이런 배경 때문이었을 겁니다.
14세기 말 이곳 통고의 성모상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라인강을 따라 순례자들이 몰려듭니다. 1389년 보니파시오 9세 교황은 성모 소성당에 부분 대사(部分 大赦)를 수여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직후 이 일대를 지배하던 백작과 선제후인 트리어 대주교의 분쟁에 휘말려 성당이 전부 파괴되고 말지요.
보른호펜 통고의 성모상. 15세기 말 무렵 제작된 1m 크기의 목조 피에타상으로, 보른호펜 성모 신심의 시작이다. 전례 중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정면으로 보고 수난과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게끔 예수님의 몸을 수평에 가깝게 눕혀놓은 형태로 제작했다.
라인강 선박 순례 모습을 담은 보른호펜 순례 기념 상본(1885). 매년 5월 1일 순례 시즌 개막 미사로 시작해 동정 성모 마리아 탄생 대축일 등 주요 성모 축일에 큰 행사가 열린다.
보른호펜의 피에타
종교개혁의 광풍이 몰아친 뒤 신교에 맞서 성모 신심을 장려하면서 보른호펜의 순례는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트리어 대주교는 순례자 수가 늘어나자, 1680년 인근 카푸친회를 불러 수도원을 설립하고 순례 사목을 맡겼습니다. 그러고는 바로크 양식으로 증개축해 성모 마리아 탄생 순례 성당을 봉헌합니다. 성당 현관과 기둥, 성당 안의 은총 소성당도 이때 새로 만든 것이죠.
성당 안은 소박합니다. 주 제대의 제단화는 성모 승천을 주제로 한 그림에 바로크 양식의 기둥으로만 장식되어 있을 뿐 별다른 화려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른호펜 피에타’가 모셔진 왼편 소성당 주 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 무릎 위에 예수님의 몸이 수평에 가깝게 눕혀져 있습니다. 사선 형태로 인체와 감정 묘사가 자연스러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이런 수평형 피에타는 신자들이 정면에서 그리스도의 시신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미사 전례 중 죽음의 무게를 묵상케 합니다. 반면 성모님의 자세는 안정감 있게 처리되어 교회의 어머니이자 수많은 전구로 구원의 은혜를 중개하는 성모의 정체성을 드러내지요.
18세기에 보른호펜은 라인강 순례의 중심지 중 하나로 발전합니다. 성모 성월과 성모 탄생 대축일에는 수천 명의 순례자가 강변에 모여 장엄 행렬과 성체 거동을 했지요. 이 전통은 오늘날 소방대 순례, 선박 순례, 도보 순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라인강변의 보른호펜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왼쪽 아래), '원수가 된 형제'인 슈테렌베르크성(가운데 위)과 리벤슈타인성(오른쪽 아래). 전설에는 형제가 서로 원수가 되어 각각 성을 짓고 반목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두 성의 무력 충돌이 있었던 적은 없다. 현재 호텔과 카페, 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수도원 마당에서 언덕 위의 두 성채가 보입니다. 하나는 거의 폐허처럼 보입니다. 불과 몇백 m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지만, 전설에 따르면 서로 원수 사이였습니다. 형제가 한 여인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질투와 오해가 깊어져 평생 반목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강을 따라온 순례자는 두 성을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겁니다. 통고의 성모님께 우리 안의 갈등과 분열을 화해와 평화로 이끌어주시길 청해봅니다.
<순례 팁>
※ 자동차·기차로 마인츠에서 코블렌츠를 오가는 길에 들르면 좋다.(코블렌츠에서 25㎞, 마인츠에서 70㎞) 성 힐데가르트 성지인 뤼데스하임, 로렐라이 절벽과 함께 멋진 코스.
※ 순례 성당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11:15분, 평일 : 7:30(월)·8:30(화·금)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