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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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참사 피한 출산 진통의 기적… “생명은 곧 하느님”

[타인의 삶] (29)생명운동가 이순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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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희(엘리사벳)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326명 목숨 앗아간 남영호 사건
55년 전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딛고
20년째 생명 운동가로 왕성한 활동
남편과 딸 목숨 살린 하느님께 감사


1000명 선교 목표
하느님 은총 보답하려 선교에 매진




생명 윤리 강의 등 생명 운동 앞장1970년 12월 15일 새벽 전남 여수시 소리도 인근에서 338명을 태운 남영호가 침몰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무리하게 실은 화물과 초과 정원 탓이었다. 남영호는 당시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었다. 하루 전 남영호를 출항시킨 제주 서귀포항은 그야말로 울음바다가 됐다.

사고 발생 반세기가 넘은 오늘날, 남영호 참사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12명. 그러나 사실은 14명이었다는 이가 있다. 당시 남편과 남영호를 탔다가 양수가 터져 하선해야만 했던 이순희(엘리사벳, 77, 서울대교구 마장동본당)씨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큰 사고를 피한 이씨. 그는 이후 자신을 살도록 해준 하느님 기적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본당에 처음 생명분과가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째 ‘생명 운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생명은 곧 하느님’이라는 믿음으로 ‘평생 1000명 선교’를 목표로 이웃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고 있다.



1000명 선교하는 그 날까지

“사고가 있던 그날, 저는 뱃속의 첫째 딸 덕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55년 동안 트라우마로 2~3시간 이상 제대로 잠든 적도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만 나와요. 그저 우리 부부를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제 딸을 살리신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뿐이에요.”

이씨는 이후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신 하느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때 한 다짐이 ‘1년에 최소 10명씩 1000명을 선교하고 하느님 품에 안기겠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현재까지 800명 넘게 주님께 인도했고, 250명 넘는 이들의 대모가 됐다. 칠순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웃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뛴다. 어느덧 슬하에 네 딸을 둔 딸부자에 ‘성가정의 모범’이라 불리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제주도 과수원집 딸이었던 이씨는 고교 동문이자 친구였던 남편과 연애를 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방황하는 당시 남자 친구를 공부시키려고 부모의 농장에서 감귤을 서리해 돕기도 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 그와 함께 서울로 왔지만, 하숙집에서 덜컥 아이가 생겨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세례를 받아 신앙생활을 해온 이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렇게 대학교 2학년 때 남자 친구와 혼인성사를 통해 일찍이 가정을 이뤘다.

 
이순희(엘리사벳)씨와 남편을 살린 첫째 딸의 27년 전 혼인성사 사진. 이씨와 남편이 네 명의 딸과 사위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첫째 딸은 부모와 자신을 살려준 하느님께 감사하며, 산부인과 교수로서 프로라이프 간사로 오랜 기간 활동했다.



위기와 은혜

철없는 시기 결혼한 이씨 부부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부산에 내려가 물건을 떼다가 서귀포 오일장에 팔았다. 침몰한 남영호를 탄 날도 부지런히 누비옷 등 물건을 팔고,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출항 10분 전 갑자기 배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양수가 터져버린 것이다. 임신 7개월 차였다. 이씨는 “옛날에는 승선할 때 종이 표를 받았다”며 “구조된 인원이 12명이라 생존자가 12명으로 알려졌지만, 저와 남편이 표를 내고 급하게 내려 아마 생존자 수에는 집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남영호 침몰 사건 생존 인원이 12명이 아닌, 14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사달은 이때부터였다. 예정보다 3개월이나 이른 출산에 남편은 이씨의 외도를 의심했다. 이씨는 “서귀포에는 산부인과도 없어 한 의원에서 8시간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나오는 중에도 외도를 의심한 남편한테 맞았다”고 전했다.

당시엔 유전자 검사와 같은 과학 기술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무려 13년 동안 남편의 가정폭력이 이어졌다. 출산한 몸을 가누면서, 승선했다 급히 내렸던 남영호가 침몰한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오로지 1.6㎏ 미숙아로 태어난 딸이 건강한지, 앞으로 남편 폭력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그 고민뿐이었다.

독재 정권의 야간 통행 금지까지 있던 그 시절, 성당은 이씨가 잠시라도 남편의 폭력을 피해 눈을 붙일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였다. 제대 뒤에 몰래 숨어있다 잠을 청하고 통행 금지가 해제되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첫째 딸이 13살 때였죠. 엉엉 울면서 ‘엄마는 왜 항상 당하기만 하느냐’고 그러더라고요. 어린 딸에게 다 이야기했죠. 아빠가 엄마한테 왜 그러는지?. 그러자 딸이 ‘엄마 내가 의사 돼서 돈 많이 벌어줄 테니까 그때까지 도망가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맨날 같이 부둥켜 안고 울었는데, 얘가 커서 참말로 의대를 가더니 산부인과를 전공으로 삼겠대요.”

어느 날은 성당에서 자고 나오다 본당 주임 신부와 마주쳤다. 현재 원로사목자인 이원규(서울대교구) 신부였다. 이 신부는 이씨 사연을 듣고 꾸르실료 연수를 권했다. 그곳에서 만난 형제자매들은 눈물만 훔치는 이씨에게 “남편과 함께 매리지 엔카운터(ME)에 참여해보라”고 권했다. 극적으로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였다.

남편은 ME에서 눈물로 지난날을 사죄했다. 이씨는 “남편이 눈물 콧물 흘리면서 ‘내가 이제 진짜 잘해줄게. 모든 것 다 잊고 용서해줘!’ 하니까 같이 울면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다”며 “ME 부부가 된 후에는 남편이 참 잘해줬다”고 했다. 신앙 안에서 고통을 견뎌낸 열매가 비로소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성가정’이었다.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는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잖아. 살아남았잖아. 나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어떻게든 잘 받아내는 일을 연구하고 싶어.” 이씨가 본당 생명분과 위원으로 20년 동안 생명 운동에 매진하게 된 데에도 딸의 권유가 있었다. 딸은 “엄마, 엄마도 낙태하지 않고 나를 낳아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생명운동 같이하자”고 했다.

이씨는 낙태 반대 서명 운동을 비롯해 생명윤리 강의에 나서고, 책도 집필하는 등 직접적인 생명 운동가로서 교회 가르침을 누구보다 투철하게 실천해왔다. 남편의 가정폭력을 고친 것도, 산부인과 의사로 키워낸 딸이 프로라이프 의사회 간사로 활동하게 해준 것도 모두 아내이자 엄마로서 오로지 생명의 소중함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씨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순희(엘리사벳, 앞 줄 오른쪽)씨가 서울대교구 마천동본당 대녀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생명의 소명

이씨는 “100세 시대에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생명의 가치를 전하는 소명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바람이 있다면, 150명 정도 더 선교해 하느님을 전하고 싶다”면서 “더 많은 이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죽는 날까지 ‘아름다운 죽음’, 참된 의미의 웰다잉을 이루도록 동반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흥행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아시죠? 그게 제주말로 ‘수고 많으셨다’는 뜻이잖아요. 모든 이가 하느님 안에서 선하게 살다가 천사처럼 그 품에 안길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저희 가족을 살려주신 하느님 뜻은 선교 사명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선교하면서 그분 말씀을 전할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몰라요. 오직 생명을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분, 하느님의 선하심을 전하는 것이 제 생명 운동 비법입니다. 제 나이 77세이지만, 밤을 꼬박 새워도 피곤한 줄 모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부푼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씨는 “지난날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하지 않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이라며 “특히 젊은 부부들도 아름다운 관계 속에 성가정을 일궈 참된 행복을 맛보는 삶을 꼭 추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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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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