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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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주교 교류, 역사적 아픔 안고 나아간 희망의 순례

제27회 한일주교교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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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주교들은 히로시마교구 주교좌 세계평화기념성당에서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한일주교교류모임을 마무리했다. 미사 후 손을 흔들고 있는 한일 주교들.
 
한일 주교들이 히로시마교구 주교좌 세계평화기념성당에서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전후 80년, 일본 히로시마의 가을 하늘 아래 한일 주교들이 다시 만났다. 젊은 세대들에게 평화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다. 주교들은 함께 걷고, 식사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역사적 상처를 외면하지 않되, 그 너머의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대화와 만남’은 평화를 위한 주춧돌이었다. ‘전후 80년의 흉터와 희망 : 젊은 세대에 평화를 연결하기 위해’를 주제로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제27회 한일주교교류모임에 동행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일본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한일 주교단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한국 대표 옥현진(광주대교구장, 왼쪽) 대주교와 일본 대표 우에무라 마사히로(요코하마교구장) 주교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헌화한 후 기도하고 있다.


‘전후 80년의 흉터와 희망…’ 주제로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찾아  
한국인 희생자들 위한 기도 바쳐 
재일 교포 신자들과 함께 미사 봉헌 

조선학교, 관심 갖자  
재일동포 자녀들에 대한 관심 촉구 
일본 정부 지원 못 받아 
한국 교회가 지원할 수 있길 희망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이경상 주교 진행 상황 설명 
일본 주교들, 높은 관심 보여 
일본 교회 협력·지원 등 논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헌화

가을빛이 내려앉은 히로시마 중심부인 나카구에 위치한 평화기념공원. 학생들과 시민들이 오가는 이곳은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장소다. 원폭 돔과 희생자들의 유품이 전시된 평화기념자료관은 당시의 비극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 오라. 무거운 짐 진 자, 멍에 벗겨 주고 영원한 생명을 네게 주리~♬”

19일 한일 주교단은 일본 주교회의 사무차장 하라다 도요키 신부의 안내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 섰다. 한국 대표 옥현진(광주대교구장) 대주교와 일본 대표 우에무라 마사히로(요코하마교구장) 주교가 헌화하고, ‘고향의 봄’과 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주모경을 바친 한국 주교단은 원폭으로 숨진 동포들을 위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옥현진 대주교는 “고국을 떠나 일본에 끌려와 노동자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원자폭탄에 죽음을 맞은 2만 명이 넘는 한국인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했다.


 
19일 히로시마교구 간온마치성당에서 한일 주교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간온마치성당에서 미사 봉헌

평화기념공원으로 향하기 전, 한일 주교단은 재일교포들이 많이 사는 히로시마 간온마치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30여 명의 주교들이 입장하자, 평일 미사에 참여한 일본 신자들은 놀라움과 감격 어린 표정으로 맞이했다.

일본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서정애(요안나, 60)씨는 “15년 전 일본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모국어로 미사를 드린 건 오늘이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18일 오전, 주교들은 야마구치현 히로시마교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이 성당은 1952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일본 방문 400주년을 기념해 지어졌다. 성당 내부에는 16세기 일본에 선교하러 온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 태극기를 흔들며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야마구치 천사유치원 아이들의 인사에 주교들은 함박웃음으로 답했다.

일본 주교단 주례로 봉헌된 미사에서 가쓰야 다이지(삿포로교구장) 주교는 “전후 80년이 지나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는 이들이 줄었다”며 “희미해져 가는 전쟁의 기억을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라고 말한 것처럼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의 잘못을 올바로 기억하고 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마구치 천사유치원 아이들이 주교들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카이 준(예수회) 신부(맨 왼쪽)가 18일 리가로얄호텔에서 ‘조선학교와 재일 조선인의 아픔에 함께하며 보게 된 것들’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한국 주교단,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 요청

한일주교교류모임은 앞서 18일 오후 4시 일본 주교회의 부의장 우메무라 마사히로(요코하마교구장) 주교의 개회사로 문을 열었다. 우에무라 주교는 “올해는 전후 80년을 맞는 해이며, 히로시마는 피폭지로서 평화를 생각하기에 매우 상징적인 장소”라며 “평화의 사도로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주 앉은 한일 주교들은 자기 소개로 한일주교교류모임을 시작했다. 환경·난민·빈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목하고 있는 나카이 준(예수회) 신부가 ‘조선학교와 재일 조선인의 아픔에 함께하며 보게 된 것들’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역사 인식이 바뀐 회심의 체험과 함께 조선학교 학생들이 겪는 차별과 현실을 소개하며 “양국 교회가 인적·물적 투자를 하며 가시적인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양국 사이에 놓인 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재일 동포들이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학교로 북한의 지원을 받는다. 51개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의 차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 주교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2년 전 한국 신자들과 조선학교를 방문했을 때 큰 아픔을 느꼈습니다. 방문 자체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조선학교에 대한 주제들을 다루는 것은 한일주교교류모임의 결실이며, 복음적인 시간입니다. 일본 주교님들이 조선학교에 더욱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전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일본 상지대(조치대)를 졸업한 강우일(전 제주교구장) 주교는 “조선학교가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전혀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학교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분위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회만큼은 조선학교를 도우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전철에서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일본 여학생이 입는 옷과는 전혀 다른,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우리는 한국 주교들을 포함해 재일 조선인들에게 거의 관심을 갖지 못했고, 대한민국 정부도 오랫동안 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재일교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강우일 주교)

마쓰우라 고로(나고야교구장) 주교는 “일본인들은 조선학교 문제를 이야기하면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우려해 이 문제에 깊이 엮이기를 피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고로 주교는 “조선학교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이라 생각한다”며 “일본 교회와 한국 교회가 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가 WYD 로고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교회,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협력

일본 주교들의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뜨거웠다. 마지막 날인 20일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는 대회의 핵심 가치인 만남·사목·순례·선교를 기반으로 한 한국 교회의 준비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또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사목자와 봉사자들이 교회 문헌을 함께 공부하고, 보편 교회 시노드 여정의 핵심인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하며 영성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주교들은 홈스테이, 외국인 청년 비자, 일본 교회의 협력 및 지원 방향 등 다양한 주제를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한일주교교류모임을 복음적 가치를 적극 실천해온 ‘용기 있는 항해’에 비유했다. 이 주교는 “배는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가 정박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을 인용, 안전한 항구에 머무는 평화가 아니라 미래의 바다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평화를 강조했다. 한일 주교단이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과거 아픔의 상처 속에 멈춰 있지 않고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옥현진 대주교는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통해 50여 명의 사제가 일본에서 사목하고 있는 것은 큰 결실”이라며 “일본 교회가 약화되고 있고, 한국 교회도 성소자가 줄고 있기에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민족 감정이 남아있지만 우리가 신앙 안에서 교류하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교회는 정부가 못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분들이 앞장서서 발언해주시고, (관계가) 진일보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일 주교단은 히로시마교구 주교좌 세계평화기념성당에서 파견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교류모임을 마무리했다. 일본 주교들은 히로시마공항과 역으로 떠나는 한국 주교들을 향해 “See you next year in Jeonju!”(내년 전주에서 만나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은


한일주교교류모임은 1996년 2월 16~17일 일본 도쿄에서 처음 열렸다. 고 이문희(당시 대구대교구장) 대주교, 강우일(당시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주교, 고 박석희(당시 안동교구장) 주교와 일본 하마오 후미오(당시 요코하마 교구장) 추기경, 오카다 다케오(당시 우라와교구장 주교, 현 사이타마 교구) 대주교 등 다섯 명의 양국 주교들이 처음 만나 물꼬를 텄다. 이 모임은 1995년 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21개국의 주교회의 연합회 제6차 총회에서 이문희 대주교와 하마오 후미오 추기경이 만나면서 시작됐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은 주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고 있어 모든 경비는 주교 개인이 부담한다.

한일 주교들은 양측의 역사 인식에 대한 상호 이해를 좁혀가는 공동의 노력을 시작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모임 주제를 선교·생명·환경·청년 사목 등으로 확장했다. 일본 주교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현재 ‘대구대교구-나가사키대교구’ ‘광주대교구-센다이교구 ’ ‘부산교구-히로시마교구’ ‘제주교구-교토교구’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인천교구와 후쿠오카교구도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양국 청년 사목 활성화를 위해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다. 수원교구는 지난해 사이타마교구 요청으로 피데이 도눔 협약을 맺고 교류 중이다. 의정부교구는 요코하마교구에 사제 다섯 명을, 마산교구는 삿포로교구에 사제 한 명을 파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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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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