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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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별’ 성모 성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성모 바실리카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52.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온즈리버프라우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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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강 좌안의 마스트리흐트 구시가지에 자리한 성모 바실리카. 서쪽 두 첨탑과 동쪽 후진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 붉은 첨탑은 개신교 성 얀 교회이고, 그 사이로 보이는 두 첩탑은 성 세르바티우스 바실리카다. 1632년 마스트리흐트가 네덜란드에 점령당했으나, 이곳만은 예외적으로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바다의 별이요, 천주의 성모여~” 가톨릭 성가 241번 ‘바다의 별이신 성모’의 첫 구절입니다. 중세 초 그레고리오 성가 ‘아베 마리스 스텔라’를 모티프로 한 곡인데요. 성모님의 오래된 호칭 가운데 하나가 ‘바다의 별’입니다. 중세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신자들에게 “파도에 휩쓸릴 때, 폭풍 속에 있을 때, 별을 바라보라, 성모님을 부르라”고 권했습니다. 중세 순례자들에게 성모님은 정말 불안한 순례길의 등불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성모님을 ‘바다의 별’이라고 부르게 됐을까요?

사실 이 호칭은 성 예로니모가 마리아의 히브리어 이름인 미르얌을 라틴어로 ‘바다의 물방울(stilla maris)’이라 풀이했던 표현이 중세 필사 과정에서 ‘바다의 별(stella maris)’로 잘못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오류가 오히려 폭풍 속에서 항해자를 인도하는 별처럼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끄시는 성모님과 너무나 맞아떨어졌기에 신학자들은 적극적으로 이 알레고리를 활용했던 것이죠. 네덜란드에는 실제로 성모님이 항해 속에서 당신께 의탁했던 이를 보호하셨음을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카르멜산의 스텔라 마리스 수도원과 함께 ‘바다의 별’ 성모 성지로 꼽히는 마스트리흐트 성모 바실리카입니다.
11세기 초 건축된 마스-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 바실리카의 서쪽 정면부. 9~10세기경부터 세속 의전사제단이 있었고, 20여 명의 의전사제단이 공동체 생활을 했다. 프랑스 혁명군이 마스트리흐트를 점령하면서 한동안 군수창고와 마구간으로 쓰였다가 1837년에야 교구가 다시 성당을 매입해 본당으로 쓰고 있다. 1886~1916년에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피에르 쿠이페르스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1933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세상의 풍파를 막는 성채

마스트리흐트 중앙역을 나와 쭉 앞으로 걸으면 마스강 건너편으로 구시가지의 실루엣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13세기 축조된 세르바티우스 돌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 번화가인데요. 골목을 벗어나 성모 광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현대에서 중세로 훌쩍 뛴 느낌이 듭니다.

광장 한쪽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석벽 건물이 오늘의 순례지인 ‘바다의 별(Sterre der Zee)’로 불리는 성모 바실리카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보이지 않고, 몇 개의 방어 창 같은 작은 창만 보여 요새의 거대한 성벽처럼 보입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마스강 일대 성당에서 볼 수 있는 11~12세기 독특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지요.

성모 바실리카가 있는 곳은 옛 로마 성곽 안 신전이 있던 자리로 성당 주변과 지하에서는 로마 시대 성벽과 망루,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흔적이 발견됐지요. 4~5세기 무렵 이 자리에는 작은 성당이 있었는데, 아마도 초창기 이 지역 주교좌 성당이었을 겁니다. 중세에는 20여 명의 의전사제단이 이곳에서 공동체 생활하며 사목활동을 펼쳤습니다. 지금은 마스트리흐트가 속한 루르몬트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루르몬트에 있지만, 마스트리흐트 성모 바실리카가 성 세르바티우스 바실리카와 함께 이 지역 신앙의 가장 오래된 곳임은 분명합니다.
성모 바실리카 주 제대. 12세기 로마네스크 기둥과 회랑이 둘러싼 가대석 위로 19세기 복원 때 그려진 네오로마네스크 천장화가 덮여 있다. 성유물 대순례 전례가 여기서 시작된다.

로마네스크의 어둠 속에 빛을 찾아

옆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어둠’이 느껴집니다. 높은 곳의 창을 통해 빛이 제한적으로 비칠 뿐이어서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고딕 성당과는 정반대의 느낌입니다. 19세기 복원을 맡은 건축가 쿠이페르스는 후대에 뚫렸던 큰 창들을 줄이고, 로마네스크 특유의 작은 창과 단단한 석조 느낌을 되살렸습니다. 어두운 공간 덕분에 후진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촛불로 밝은 주 제대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됩니다. 그리고 제대 위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승천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의 뼈대 위에 고딕, 바로크, 19세기 복원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그 시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남측 기둥에 희미하게 남은 성 가타리나 벽화입니다. 고딕 발다키노 아래에서 순교의 바퀴와 칼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요. 1400년 전후에 그려진 이 벽화는 시대가 바뀌며 회반죽과 페인트 아래 가려져 있다가 1902년 내부 정비 때 다시 드러났지요.
‘바다의 별’ 성모상(15세기). 원래 마스트리흐트 프란치스코회 성당에 모셔져 있었다. 전쟁과 세속화 속에 여러 차례 옮기다가 1837년 성 니콜라스 성당 폐쇄 후 지금의 성모 바실리카로 옮겼고, 1903년 바실리카 입구의 메로데 소성당에 자리 잡았다. 1912년 성 비오 10세 교황의 대관으로 ‘바다의 별’ 성모상으로 공식 선포되었다.
마스트리흐트의 성유물 대순례(Heiligdomsvaart Maastricht). 7년마다 ‘바다의 별’ 성모상을 앞세우고 도시 전체를 행렬한다. 이때 성모 바실리카와 성 세르바티우스 바실리카에 모셔진 성모님 허리띠, 마스트리흐트 주교였던 성 모눌프와 성 곤돌프 등의 성유물도 함께한다. 다음 순례는 2032년 6월이다.

도심의 나침판 바다의 별 성모상

하지만 순례자가 이곳을 찾는 건 성당 입구 쪽 메로데 소성당의 성모상 때문입니다. 15세기경 제작된 성모상으로 원래 마스트리흐트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마스트리흐트 시민들은 16~17세기 전쟁과 재난 속에 성모님의 전구를 청했고, 많은 이가 은총을 체험했지요. 감사의 마음으로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마다 성모상을 모시고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출발해 도심을 한 바퀴 행렬했는데, 이 전통이 오늘날 도심 ‘기도 순례길(Bidweg)’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바실리카에서 출발해서 끝나죠.

성모상을 바다의 별이라 부르며 공경하게 된 건 바다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계기였습니다. 1684년 브뤼셀 출신 귀족 프랑수아 2세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죽을 고비에 있던 그는 마스트리흐트 프란치스코회 성당의 성모님을 떠올리며, 살아 돌아간다면 성모님을 위해 제대를 제작해 봉헌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배는 기적처럼 항구에 닿았지요.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바다의 별’ 호칭도 퍼졌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이 성모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완전히 자리 잡습니다. 1912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 비오 10세 교황이 바다의 별 성모에 대한 대관식을 인준했고, 1933년 비오 11세 교황은 바실리카를 준 대성전으로 지정하면서 바다의 별 성모님께 봉헌된 하느님의 집으로 굳게 각인됩니다.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유럽연합(EU)이 탄생합니다. 파란 바탕에 12개의 별을 그린 깃발을 보면 스텔라 마리스 도시에서 극심한 분열을 겪었던 유럽이 함께 평화로 나아갔던 게 우연만은 아니겠죠. 그때의 정신이 흔들릴 만큼 지금 세상의 풍파가 거셉니다. 주님의 평화를 향해 길을 잃지 않고 굳건히 나아가도록 도와주십사 청합니다.
 
<순례 팁>

※ 중앙역에서 성모 바실리카(Onze Lieve Vrouweplein 9)까지 도보 15분, 성모 바실리카에서 성 세르바티우스 바실리카까지 도보 8분.

※ 7년마다 열리는 ‘성유물 대순례’(2032), 매년 부활절 월요일 ‘기도 순례길’. 도심에 표지가 있어서 개인 순례도 가능(성당 안내 책자). 성모 바실리카 미사: 주일과 대축일 08:45·11:00(라틴어), 평일 09:30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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