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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좇던 청년에서 성소자로… 삶의 방향 바꾼 ‘시드니 WYD’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가다] 시드니 WYD (2) 성소를 향한 확신과 신앙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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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4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청년들이 본대회 개막을 앞두고 도착한 십자가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OSV


다큐멘터리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가다’ 2화 영상 보기 ▶ "교회의 오늘을 만드는 사람들"


호주 교회는 1990년대 이후 급속한 세속화의 흐름을 겪고 있었다. 이민자 유입의 증대와 종교 다양성이 심화되던 그 시기에 특히 젊은 층 미사 참여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졌고, 실천적 신앙생활은 약화되는 추세였다. 더구나 당시 경제불안마저 가중돼 호주 청년들의 미래는 더욱 불안정해진 상황이었다.

호주 교회는 다시 도약하는 ‘청년 재복음화’를 위해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WYD) 개최를 준비했지만, 교회 신뢰를 추락시켰던 성직자 성추문 이슈와 청년 사목의 어려움으로 대회 개최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드니 WYD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도 결국 호주 교회와 수많은 젊은이에게 신앙을 향한 확신의 꽃을 피웠다.

2027 서울 WYD를 향한 여정에서 역대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해온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공동기획 ‘개최지를 가다’의 2008 시드니 WYD 2편은 대회를 통해 성소와 삶의 큰 확신을 얻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한 주간의 축제, 평생의 부르심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던 18살 소녀는 시드니 거리에서 만난 수도자들을 보며 처음으로 멈춰 섰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보이는 그들이 오히려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청년은 WYD 십자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교도소 수감자들을 보며, 자신이 알고 있던 신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떤 이는 그곳에서 평생의 배우자를 만났고, 혼인과 가정의 삶 역시 하느님께 응답하는 성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8년 7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청년 순례자들로 가득 찼던 시드니 WYD는 이렇게 누군가에겐 한 주간의 축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부르심의 시작이 됐다. 시드니가 남긴 가장 깊은 열매도 여기에 있다. 대회는 끝났지만, 그 안에서 시작된 기쁨과 공동체, 믿음은 누군가의 삶 안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생명의 수녀회 메리 그레이스 수녀가 2025년 12월 2일 ACYF(호주청년대회) 현장에서 2008 시드니 WYD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금메달을 꿈꾸던 소녀, 수녀가 되다

18살 소녀는 늘 몸을 앞세워 세상과 맞붙었다. 럭비, 서핑, 달리기?. 승부가 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뛰어들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해, 그는 리우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호주 7인제 럭비 선수 선발 훈련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상위 40명 안에 들 정도였다.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여름, 시드니에서 WYD가 열렸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2025년 12월 2일 cpbc와 만난 생명의 수녀회 메리 그레이스 수녀는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수도자들을 가까이서 만났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성공을 좇던 10대 소녀에게 그 모습은 낯선 충격이었다. 그 순간 ‘이 수녀님들을 이렇게 기쁘게 하는 하느님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크게 떠올랐다.

 
생명의 수녀회 메리 그레이스(왼쪽에서 두 번째) 수녀가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서 가족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 18살이었던 그레이스 수녀는 이 대회를 계기로 수도 성소를 발견했다. 본인 제공


시드니 거리에서 만난 젊은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레이스 수녀는 그전까지 신앙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여겼는데, 도시 전체가 하느님을 기쁘게 증언하는 청년들로 가득 찬 모습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깊이 체감했다고 했다.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수도자들이 생명 수호 활동과 위기 여성 지원 사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낙태의 상처를 안은 여성들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하느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 한가운데 실제로 개입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 수녀는 시드니 세계청년대회를 “거대한 각성이자 회심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대회가 끝난 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지만, 자신은 이미 이전과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인생에서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모든 압박이 제 어깨에서 떨어져 나갔고, 예수님을 따르면 그분이 길을 보여주실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2011 마드리드 세계청년대회 당시 21살 평신도였던 생명의 수녀회 메리 그레이스 수녀(왼쪽 세 번째)가 가족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그레이스 수녀는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느님을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따르고 싶다는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갈망은 결국 그의 삶을 수도성소의 길로 이끌었다.

“계속 세계청년대회의 그 순간들로 돌아가요. 왜냐하면 은총의 순간은 영원하니까요.”

 
호주 시드니대교구 처치힐 성 패트릭본당 주임 루이 바라캇 신부가 2025년 12월 4일 성당에서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퍼스널 트레이너에서 사제로

시드니 WYD 당시 국제 전례 그룹에 참여했던 루이 바라캇(시드니대교구 처치힐 성 패트릭본당 주임) 신부는 어릴 때부터 사제를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다. 운동과 스포츠과학을 전공한 뒤 퍼스널 트레이닝 사업을 운영했고, 이후에는 산업재해 보상 분야에서 일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자신의 길을 찾아가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시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앙 안에서 자랐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가 열렸다. 바라캇 신부에겐 대회 자체보다 그에 앞선 준비 과정이 자신의 성소 여정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던 약 2년 동안 그는 진지하게 신앙을 살아가는 또래 가톨릭 청년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처음 ‘식별’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됐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어떤 삶으로 부르시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바라캇 신부는 당시 누군가로부터 “사제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하느님께서 자신 같은 사람을 당신의 사제로 부르실 수 있다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늘 ‘좋은 삶’을 원했지만, 때로는 그것을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기억 속에 특히 강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 자원봉사 과정에서 찾았던 여성 교도소 방문이다. 그는 “수감자들이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대형 WYD 십자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호주 시드니대교구 루이 바라캇 신부가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한 사진. 본인 제공


또 다른 전환점은 ‘국제 전례 그룹’(International Liturgy Group) 활동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과 함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주요 전례를 가까이서 돕는 역할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교황을 직접 만나 축복도 받았다. 바라캇 신부는 “그날 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이 더 크고 깊은 보편 교회의 삶 안으로 초대받고 있음을 깊이 묵상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사제와 수도자들의 모습은 그의 성소 식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라캇 신부는 “기쁨에 찬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한 것은 제가 사제성소에 마음을 열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같은 믿음 안에서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세계청년대회가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교회를 체험하는 자리라고 느꼈다.

그는 또 당시 현장을 떠올리며 “당시 교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우려와 시선은 청년들의 생명력 넘치는 신앙 공동체 앞에서 무색해졌다”며 “수십만 명이 함께한 성체조배는 지상에서 맛본 천국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시드니 세계청년대회가 바라캇 신부를 사제로 만든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대회는 사제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그전까지 사제직은 막연히 멀게 느껴졌지만,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통해 기쁨과 활력이 있는 삶으로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바라캇 신부는 “세계청년대회는 광란의 파티가 아닌, 순례이자 우리 삶의 여정을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혼인도 성소라는 깨달음… 대회가 지핀 신앙의 불씨 계속되어야


세계청년대회 안에서 만난 부부
수도성소 고민하던 중 결혼·가정 선택
국경 초월해 함께 하느님의 뜻에 응답

종교행사 이상의 의미 남긴 WYD
삶·신앙 돌아보며 성소의 씨앗 움튼 계기
대회 끝나도 후속 사목·동반 반드시 필요

 
엘리사 라졸리와 크리스토퍼 란자리니 부부는 다섯 자녀 클레어 크리스터벨(11), 이사벨 케이트(10), 루카스 알렉산더(6), 프란치스코 에마누엘(5), 아날리즈 마리아 베로니카(3)를 두고 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만난 두 사람, 아이 다섯을 키우다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는 엘리사 라졸리(38)·크리스토퍼 란자리니(40) 부부에게 단지 서로를 만나 결혼하게 된 계기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혼인과 가정의 삶 역시 하느님께 응답하는 하나의 성소임을 깨닫게 한 출발점이었다.

엘리사는 2008년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인 ‘갭이어’(Gap year)를 보내며 호주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세계청년대회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엘리사는 이탈리아 순례자들을 위한 행사 준비와 가정 연결 등을 도우며 대회를 가까이서 준비했다. 당시 그는 수도성소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느님께 많은 것을 받았고, 그 은총에 가장 온전히 응답하는 길은 수도생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 그는 세계청년대회 안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크리스토퍼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 순례자와 자원봉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교리교육과 교황 환영 행사, 밤샘기도 등 여러 행사를 마친 뒤 다시 만나게 됐다.

 
2008년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뒤 연인으로 관계를 이어가던 시절의 엘리사 라졸리씨와 크리스토퍼 란자리니씨. 본인 제공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설렘이나 현장 분위기에 기대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엘리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세계청년대회 안의 강렬한 감정 속에서는 무엇이 진짜인지 분별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의 기준은 분명했다.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감정적 관계가 아니라 혼인과 가정을 향한 여정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왔고, 크리스토퍼와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도 이 관계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서 “결혼도 성소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역시 세계청년대회 이후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간 뒤에도 시드니에서 경험한 세계청년대회의 은총과 엘리사를 계속 떠올렸고, 결국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이후 두 사람은 단순히 연애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부르심,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함께 나누며 관계를 이어갔다.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나 2013년 결혼을 한 엘리사 라졸리·크리스토퍼 란자리니 부부의 웨딩 사진. 본인 제공


두 사람의 혼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약혼과 결혼, 비자 문제, 이탈리아와 캐나다·호주를 오가는 삶, 아홉 차례의 이사와 경제적 불안정까지 여러 현실적 어려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부부는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붙들어준 것은 결국 가톨릭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 나라에 있든 둘은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같이 기도할 수 있었으며, 그 안에서 삶의 중심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엘리사는 “가끔은 수도생활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크리스토퍼는 이에 대해 “우리에게는 가족이 곧 선교”라며 웃어 보였다. 다섯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오늘의 삶 역시, 그들에게는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서 시작된 부르심의 연장선 위에 있다.

 
호주 멜버른대교구 빈 레 신부가 2025년 12월 1일 집무실에서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가 남긴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소의 열매로 이어지다

이처럼 시드니 세계청년대회는 누군가에게는 수도성소의 출발점이 됐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사제직을 향한 질문을 심었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혼인과 가정의 삶 역시 하느님께 응답하는 하나의 성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멜버른대교구 빈 레 신부는 “이러한 열매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청년대회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과 신앙 여정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구조를 지닌 행사이며, 바로 그 안에서 성소의 씨앗도 자연스럽게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빈 레 신부 역시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 당시 교황 미사에서 부제 복사로 봉사하며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보여준 신앙의 에너지를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이후 멜버른대교구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 세계청년대회가 젊은이들에게 단순한 종교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성소를 가진 이들에게는 확증이 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신앙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됩니다.”

 
2008년 7월 15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개막미사에는 약 15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됐다. OSV


그러면서 세계청년대회의 열매가 저절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계청년대회가 신앙의 불씨를 지필 수는 있지만, 그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은 이후의 동반”이라는 것이다. 대회 기간 안에 체험한 기쁨과 열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만큼, 그것을 본당과 교구, 청년 공동체 안에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후속 사목과 동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얼마나 큰 대회를 치러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경험 이후에도 젊은이들의 삶 안에서 신앙의 불씨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어떤 길을 열어 줄 것인가다.

김정아 기자 junga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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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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