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함께 힘쓰고 있는 강효영 변호사(왼쪽)와 박종석 남대문시장준본당 사목회장이 꽃시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강효영 변호사와 박종석 사목회장, 노숙인 자활 ‘착한이웃’으로 동행
노숙인 형제들의 꽃배달 노동은 자존감 회복과 사회 복귀의 ‘디딤돌’
모두를 위한 경제 EoC, 시혜 아닌 연대·친교로 완성되는 복음의 경제
서울 남대문시장의 새벽은 치열하다. 그 활기찬 삶의 현장 한복판, 화사한 꽃바구니를 들고 좁은 골목을 누비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서울대교구 남대문시장준본당(주임 장인수 신부)의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인 ‘착한이웃’의 배달 형제들이다. 이들의 발걸음 뒤에는 화려한 국제 변호사의 삶을 뒤로하고 낮은 곳의 동반자가 된 강효영(프란치스코, 70) 변호사와 40년 동안 꽃시장을 지켜온 남대문시장준본당 사목회장 박종석(노렌조, 65, 빛두레 화원) 대표의 따뜻한 연대가 있다.
‘체포된’ 강효영 변호사 이야기
강효영 변호사는 영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국제 법률 전문가로, 홍콩과 한국의 대형 로펌에서 활약하던 엘리트였다.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예상치 못한 시련 덕분이었다. 홍콩 출장 중 공항에서 체포되는 사건을 겪은 것이다. 홍콩에는 국민연금제도가 있는데, 그는 홍콩 두 곳의 로펌에서 일하고 떠날 때 연금을 두 차례 환급받았다. 그 후 환급이 한 번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1년 반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 시간은 그에게 인생의 우선순위를 묻는 전환점이 됐다.
“성공과 직장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뜻을 가장 먼저 찾아야 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죠.”
그는 2017년 은퇴 직후 2008년부터 봉사해온 ‘우리물터’의 형제들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더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돌아온 대답은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우리물터’는 2001년부터 서울 남대문시장준본당이 운영해온 노숙인 전용 무료 목욕 및 세탁시설이다.
꽃을 든 남자, 박종석 대표 이야기
‘착한이웃’의 창설자인 박종석 본당 사목회장은 1990년부터 10년 가까이 프라도회 수사로 생활했다. 1985년 화원 종업원으로 남대문시장과 인연을 맺은 그는 수사 생활을 마친 후에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빛두레 화원’을 운영하며 신앙의 삶을 이어갔다.
2017년 본당 사회사목분과장이었던 그는 노숙 형제들의 “일하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8개월 동안 노숙인을 위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가 있는 시장 안에서 답을 찾았죠.” 그렇게 강 변호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탄생시킨 것이 바로 꽃배달 자활 프로그램 ‘착한이웃’이다. 가난한 이들 곁을 지켰던 전직 수사의 헌신과 삶의 허무를 딛고 하느님 뜻을 찾은 변호사의 진심이 남대문 꽃시장에서 ‘자활’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착한이웃’의 핵심은 배달인·가게·봉사자·후원자라는 네 그룹이 이루는 수평적 관계에 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다거나, 받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
포콜라레 회원이면서 한국 EoC 운영위원인 강 변호사는 2024년 이탈리아 로피아노 소피아 대학에서 6개월간 체류하며 EoC(Economy of Communion)를 공부했다. 포콜라레 운동 창설자 끼아라 루빅이 제안한 EoC는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두는 경제모델이다.
강 변호사는 이 경제모델을 ‘착한이웃’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배달 형제들의 교통비 부담을 없애기 위해 ‘기후동행카드’를 지원하고, 저축액의 25를 ‘숙박 지원금’으로 얹어준다. 이는 단순한 이자가 아니라, 그들이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자립해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생활하길 바라는 공동체의 무상(Gratuitousness)의 사랑이다.
‘착한이웃’에서 꽃배달은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깨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노동을 통해 다시 돈을 만지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감각이 이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김 프란치스코씨는 한때 전국 호텔에 물류를 공급하던 큰 사업가였다. 그는 친구의 배신과 횡령으로 모든 것을 잃고 용산 텐트촌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하지만 ‘착한이웃’을 만나 꽃배달을 시작하며 그의 ‘리바운드(회복)’는 시작됐다. 주말에는 이삿짐센터 일까지 병행하며 2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저축한 그는 마침내 오토바이를 장만하고 은평구에 번듯한 투룸을 얻어 나갔다. 지금은 어엿한 오토바이 배달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박종석 사목회장이 기억하는 이 요셉씨의 이야기는 더욱 뭉클하다. 5년간 꽃배달을 하며 600만 원을 모았던 그는 몸이 아픈 와중에도 주일 미사만큼은 거르지 않던 신실한 형제였다. “재작년 부활 때 세례를 받으셨어요. 비록 얼마 후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성모상 앞에 앉아 기도를 바치며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셨죠.” 이처럼 ‘착한이웃’은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신앙도 선물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을 통해 세례를 받은 형제만 15명에 달한다.
착한이웃 프로그램을 통해 꽃배달을 하고 있는 한 형제의 모습. 강효영 변호사 제공
강 변호사가 ‘착한이웃’을 운영하며 경계하는 것은 ‘일방적인 시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영양실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체중을 재고 간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1년 넘게 했다. 하지만 떠날 무렵, 한 어머니가 다가와 던진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나는 당신이 와서 불행했다”는 말이었다. 강 변호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당신이 정한 기준 때문에 내 아이는 갑자기 영양실조 환자가 되었고, 나는 나쁜 엄마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누군가를 도울 때는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착한이웃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형제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먼저 물었던 이유도 바로 그 인생의 교훈 때문”이라고 밝혔다.
‘착한이웃’의 핵심은 배달인·가게·봉사자·후원자라는 네 그룹이 이루는 수평적 관계다. 박 대표는 이를 ‘사랑의 나무가 맺은 열매’라고 표현한다. 강 변호사는 “풍요 속에서 잊고 살았던 ‘절실함’을 이 형제들에게 배운다”면서 “이 분들은 구원을 향한 절실함을 알려주는 삶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상인들의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실하게 배달하는 형제들을 보며 ‘착한 이웃’이 되었죠. ‘함께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시장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평적 연대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50여 명의 형제가 거쳐 갔고, 현재 10여 명의 형제가 배달일을 하며 당당한 경제 주체로 활동 중이다. 빈부의 격차를 모두를 위한 경제모델로 메꾸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에서 두 남성이 어깨를 맞대고 섰다. 서로 회장이라 부르는 두 사람의 미소가 꽃처럼 아름답다.
“복음은 머리로만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휴짓조각에 불과합니다. 깨달은 삶을 통해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죠. 깊이 없이 물 위에 떠 있으면 그 속 깊숙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알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외면하면 사랑할 수 없죠.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 시장 상인들과 노숙 형제들은 진정한 ‘착한 이웃’이 됩니다.”(박종석 사목회장)
“홍콩에서 체포된 일을 지금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그때 체포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지금도 의미 없이 어디선가 헤매고 다녔을 테니까요. 하하.”(강효영 변호사)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 착한이웃 배달인들을 돕기 위해 꽃배달을 희망하는 독자들은 ‘빛두레 화원’(02-773-0906)으로 주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