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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과거가 현재를 돕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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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쟁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중동과 이란을 둘러싼 군사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분쟁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과거의 고통을 매개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기억의 방식 또한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해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행동을 추동하는 강력한 정치적 자원이 된다.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는 이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과거의 희생 경험을 계승한 세대가 자기 민족과 국가에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문제는 “우리는 피해자였다”는 기억이 “그러므로 우리는 정당하다”는 논리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분명 피해의 기억을 지닌 공동체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군사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할 때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피해가 현재의 가해를 면책하는가? 과거가 현재를 돕지 않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가 마주해야 할 윤리적 물음이기도 하다.

이처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여러 왜곡을 낳는다. 희생자로서의 민족 서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던 개인들의 존재를 지워버림으로써, 민족 내부의 복잡한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피해의 경쟁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때 기억은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통로가 아니라, 오히려 배제하고 차별하는 근거로 변질된다. 결국 기억은 연대의 가능성을 좁히고, 서로를 향한 적대의 감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기억은 정의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책임의 출발점이다. 기억은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하고 공동체가 그 고통에 응답하도록 요구하는 윤리적 행위다. 가톨릭 전통에서 정의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거의 피해를 근거로 현재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정의의 개념 자체를 왜곡하는 일이 되고 만다. 이는 정의를 회복해야 할 기억이 오히려 새로운 부정의를 낳는 역설이기도 하다.

오히려 과거의 고통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피해의 기억은 복수의 권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의무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의 기억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절대화하고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는 방식을 넘어서자는 요청이다. 전쟁은 언제나 새로운 피해자를 낳고, 그 피해는 다시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억으로 축적된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인류는 끝없는 보복의 역사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억의 경쟁’이 아닌 ‘기억의 연대’일 것이다. 서로 다른 고통의 기억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더 넓은 공감과 책임으로 확장될 때, 기억은 비로소 폭력을 멈추는 자원이 된다. 그때 비로소 과거는 현재를 돕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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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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