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인 1926년 5월 29일.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1875~1938) 주례로 성 유스티노 신학교 소속 부제 11명의 사제서품식이 거행됐다. 한국교회가 아직 넉넉지 않은 사제 수와 어려운 사목 환경 속에서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넓혀 가던 때였다. 서품식 다음 날인 5월 30일, 드망즈 주교는 새 사제 11명을 각 지역으로 파견하는 사제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를 통해 7개 본당이 새로 세워졌다. 한날 한뜻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의 공동체로 자라났다.
그 가운데 대구대교구 남산본당과 성동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 마산교구 옥봉동본당은 오늘날까지 신앙의 맥을 이어 오며 5월 나란히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한 세기 전 사제서품과 본당 신설로 시작된 공동체의 여정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 신앙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 ‘대구대교구 남산본당’
대구대교구 남산본당(주임 박덕수 스테파노 신부)은 석종관(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 정식 성당이 없어 교구청 내 평신도 교육 공간이던 ‘명도회관’을 개축해 사용했지만, 공동체의 활동은 활발했다. 1928년에는 본당 차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리말 성가 수십 곡을 담은 성가집 「공교셩가집」을 발행했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본당은 2대 주임 남대영(루도비코) 신부 주도로 1929년 5월 새 성당 건립 준비에 나섰다. 공동체가 합심해 현재 성당 맞은편 자리인 대명동 언덕의 토지를 매입했고, 1936년 가을 새 성당을 착공해 이듬해 10월 10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 소재지가 대명동으로 옮겨지면서 ‘대명동성당’으로 불렸다. 일제의 압력으로 1945년 3월 11일부터 성당을 집단수용소로 내주는 아픔도 겪었다.
대구대교구가 1952년 4월 2일 여성 고등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효성여자대학을 설립함에 따라 성당과 부지는 대학이 사용하게 됐다. 같은 해 가을 본당은 교구청 부지인 성모당 남쪽 현 위치에 새 성당을 지었고, 1953년 5월 5일 제6대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사도)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성당이 다시 남산동으로 옮겨지면서 본당 명칭도 현재의 남산본당으로 변경됐다.
남산본당은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본당 출신 사제만 39명에 이른다. 본당 출신 첫 사제는 제2대 마산교구장을 지낸 장병화(요셉) 주교이며, 하느님의 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도 본당 출신이다.
남산본당은 성모당과 인접해 설립 초기부터 오늘까지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로 자리해 왔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남산본당 100년사」 편찬을 비롯해 전 신자 성지순례, 100주년 기념 바자와 음악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5월 30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 신심 운동 매진하며 지역사회 발전 이끌다 ‘전주교구 부안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주임 김정훈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03년경 전북 부안군 하서면 등용리 일대에 교우촌이 형성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 12월에는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등용리공소 경당이 봉헌됐다. 이후 본당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드망즈 주교는 1926년 5월 30일 이기수(야고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초대 주임 이기수 신부는 등용리가 외진 곳에 있어 교세 확장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고, 1935년 옛 부안문화원이 있던 자리에 새 성당 터를 마련했다. 이후 성당 이전과 함께 4년제 소학교를 세워 지역사회 문맹 퇴치에 앞장섰고, 교리교육을 통해 교세를 넓혀 갔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1년 소학교는 강제 폐교됐지만, 당시 성당 자리는 훗날 청우실업학교로 발전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6·25전쟁 중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본당은 1957년부터 새 성당 건립을 추진했고, 1963년 8월 27일 제4대 전주교구장 한공열(베드로)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은 1950년대 후반부터는 농촌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간척사업을 실시해 신자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1980년대 들어 신자들은 신심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때는 매년 100명 이상의 새 신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도 다수 배출했다.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본당은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리모델링하고 쉼터를 조성했다. 또 100주년 기도문을 함께 바치며 신자 재교육 특강, 성지순례, 성경쓰기와 성경통독, 묵주기도 봉헌 등 신심을 살찌우는 다양한 영성운동도 전개했다.
본당은 5월 17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김정훈 신부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던 선배 신앙인들의 기도와 희생이 오늘의 본당 공동체를 세웠다”며 “다가올 100년도 더 따뜻하고 더 열린 공동체,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기쁘게 머물 수 있는 교회, 지역사회 안에서 복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본당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28개 본당의 모본당 ‘대구대교구 성동본당’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주임 김태한 바오로 신부)은 이성인(야고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에는 ‘경주본당’으로 불렸다.
천년 고도(古都) 경주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공동체로 경주 11개, 포항 17개 본당의 모본당이다. 1983년 9월 1일 성건본당을 분리하면서 본당명을 성동으로 바꿨다.
본당은 1992년 4월 1일 발생한 화재로 1959년부터 사용하던 성당을 잃었다. 이후 1999년 새 성당 공사에 들어가 2001년 1월 28일 제8대 대구대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주례로 현재의 성당을 봉헌했다.
2026년 3월 현재 2514명의 신자들이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는 본당은 박재수(요한) 신부를 시작으로 그동안 사제 9명, 수도자 30명을 배출했다. 본당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나눔 활동도 꾸준히 이어 왔다.
2023년 1월 부임한 제31대 주임 김태한 신부는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초대해 공동체의 활력을 높이고, 100년을 이어 온 신앙 공동체에 걸맞은 영적 쇄신을 이끌고 있다.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한편, 예술적 감각을 담은 십자가상과 성모 마리아상 등을 배치해 신자들과 지역 주민, 경주를 찾는 타 지역 신자들에게도 특별한 감흥을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본당은 5월 31일 오후 2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설립 100주년 기념미사를 거행한다. 현재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성당을 찾는다.
김 신부는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 공동체를 구원의 도구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복음화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고, 지난 100년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가운데 살아 있는 신앙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산청 성심원 설립 등 지역사회에 사랑 실천 ‘마산교구 옥봉동본당’
마산교구 진주 옥봉동본당(주임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 설정 이후, 초대 대목구장으로 부임한 드망즈 주교는 미국교회 한 신자의 성금을 받아 진주 읍내 동북쪽, 옥봉동 산 아래 땅 120평을 구입해 공소를 마련했다. 당시 초대 회장을 맡은 이낙종(스테파노) 씨는 전교에 헌신했고, 그의 아들 이상석(가브리엘) 씨도 ‘가톨릭청년회’를 조직해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많은 이의 정성이 모여 1923년 목조건물이 신축됐고, 정수길(요셉)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문산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됐다.
설립 당시 본당명은 진주본당이었다. 진주·사천·삼천포·합천·의령·하동·남해 지역을 관할했다. 이후 1967년 제10대 주임으로 박정일(미카엘) 신부, 훗날 마산교구 제3대 교구장이 부임한 뒤 현재의 옥봉동본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랜 역사만큼 본당이 지역 복음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현재 경남 진주 소재 12개 본당의 모본당으로 ‘진주 지역의 어머니 성당’으로 불린다. 또한 해성학원?해성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교육사업을 펼쳤고, 한센인 공동체인 산청 성심원을 설립했다. 노인 요양 시설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사랑의 실천도 이어 왔다.
이진수 신부는 “진주대로의 끝자락, 낙후된 지역에 본당이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 부합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며 “본당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말씀 그대로 살고자 노력해 온 공동체”라고 전했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친다. 2025년 대림 1주일부터 ‘본당 설립 100주년 기도’를 봉헌해 왔으며, 올해 사순 시기에는 역대 주임신부 특강을 마련했다. ‘열일곱이다’ 음악 피정(4월 19일)에 이어 5월 8일에는 기념 음악회 ‘은총의, 100년 찬미의 노래’와 기념 사진전을 열었다. 100주년 기념미사는 5월 10일 10시30분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봉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