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5월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성모 성월과 함께 ‘가정의 달’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함께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부모님만큼이나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분이 있다면, 바로 선생님일 겁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감사했던 은사님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처음 학교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더러는 심한 체벌을 가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씀을 하신 분도 계셨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분이 진심으로 저를 아끼고 사랑으로 가르쳐주신 참스승이셨습니다. 덕분에 큰 탈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승이라 하면 흔히 초·중·고교, 나아가 대학과 대학원 은사님을 떠올리지만, 제게는 또 다른 선생님이 계십니다. 학교보다 성당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그 시절, 신부님도 저에게는 넓은 의미의 스승이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 수험생 시절, 신앙으로 저를 붙잡아 주셨던 김흥주(베드로) 몬시뇰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당시 본당 주임 신부님이셨던 그분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제게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수능을 마친 제게 신부님께서 조심스레 물으셨습니다.
“은총아, 교리교사를 해보지 않겠니?”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놀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 나이에 봉사직을 맡으라는 말씀은 솔직히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에게 그물을 버리고 따라오라 하셨던 ‘제자로의 부르심’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대학교 4년을 거쳐 ROTC 장교로 임관할 때까지 교리교사로 봉사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신부님의 말씀에 응한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 싶습니다. 교리교사로 봉사하는 동안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 곁에서 저는 마치 열두 제자 중 하나처럼 많은 것을 여쭤보았고, 신부님께서는 비유로 제자를 가르치시던 예수님처럼 따뜻하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일러주셨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신부님께서 다른 본당으로 부임하시고, 바쁜 일상 속에 연락도 뜸해졌습니다. 이후 취재 차 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을 방문했을 때 잠깐 뵌 것이 전부였고, 그 후로는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선배 자녀의 대부를 서게 되었습니다. 세례 축하 선물을 사러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성물방을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습니다. 바로 김흥주 몬시뇰이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명동 한복판에서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신부님 손을 한참이나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선배 자녀의 세례식이 열리는 바로 그 성당의 주임 신부님으로 계셨습니다. ‘아, 이게 무슨 인연인가. 하느님이 맺어주신 인연은 반드시 다시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받아주고 안아주는 스승. 어쩌면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 아니실까요. 여러분 삶에는 예수님을 닮은 선생님이 계셨나요?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망설이지 말고 먼저 연락해보시길 권합니다. 하느님 섭리 안에서 맺어진 인연은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