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자립준비청년의 빈칸을 찾아서 3. 동행-‘나를 믿어주는 어른 한 명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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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벗들의벗’을 설립한 박일우씨. 자신 역시 자립준비청년이었던 박씨는 위기의 자립준비청년을 찾아 맞춤형으로 지원하고자 단체를 설립했다.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 돕는 선배들
일자리·환경 개선부터 멘토링 역할 수행
제도적 지원 넘어 정서적 유대감 형성
가톨릭평화신문은 자립준비청년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자립준비청년 출신으로 숱한 시행착오를 이겨낸 뒤 이젠 후배들의 든든한 ‘벗’이 된 박일우(알로이시오, 31)씨와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따뜻한 ‘틈’이 되어주고 있는 신선(34)씨를 만났다. 그야말로 지도 없는 세상에서 박씨가 외로운 홀로서기 대신 ‘함께 서기’를 배울 수 있도록 동행해준 이는 살레시오회 김해영 신부였다. 신씨에게는 아름다운재단 김성식 팀장이 그 존재였다. 박씨는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김해영 신부의 사진을, 신선씨는 김성식씨의 저서 「안녕, 열여덟 어른」과 그에게서 받은 진심 어린 편지를 품에 안고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사람의 존재는 대다수 자립준비청년이 마주하는 정서적 ‘빈칸’을 채워줬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
박일우씨는 자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이로 살레시오회 김해일 신부(액자 속 사진)를 꼽았다. 박씨는 태어날 때부터 20년 가까이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한 ‘부산 소년의 집’에서 자랐다.
비영리단체 ‘벗들의 벗’ 설립한 박일우(알로이시오)씨
“신부님은 제 영적 아버지예요. 21살 어린 나이에 시설 아이들과 함께 살며 사회복지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족도 없고 상의할 곳 없는 제게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대해주셨죠. 신부님은 저를 항상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쑥스러워 신부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못 했어요. 신부님이 저를 믿어준 그 신뢰가 제가 엇나가지 않고 이 길을 걷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박일우씨는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한 ‘부산 소년의 집’에서 20년 가까이 자랐다. 2014년 퇴소하던 날, 기차역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마주한 세상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사고뭉치였던 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준 것은 고3 시절 우연히 읽게 된 마리아 수녀회 설립자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전기였다. “신부님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그를 사회복지사의 길로 이끌었고, 당시 마리아 수녀회가 서울 은평구에서 운영하던 ‘꿈나무마을’에 취직해 자신의 어린 모습과 닮은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지내며 행복을 맛봤지만 18살이 되어 시설을 떠나는 아이들 뒷모습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팠다.
“제가 처음 사회로 나와 겪은 시행착오를 아이들은 덜 겪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처음 마주하는 세상에서 경제적인 것, 관계적인 것 등 삶의 여러 부분에서 넘어지고 실패할 텐데, 아이들이 건강하게 일어나 극복하는 법을 모른 채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죠.”
사회복지사 일을 그만둔 그는 지난해 청소년행복재단이 ‘쓰레기 집’에 사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만났던 고위기 청소년 10명 중 8명이 자립준비청년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한 아이와 닿은 영상통화 너머로 본 집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쓰레기 산’이었다.
“문 앞까지 쓰레기가 차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충격적이었죠. 세상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 상황이었습니다. 단순히 이 아이들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관계에 취약한 이유를 ‘일방적인 양육 환경’에서 찾는다. 아이가 보채면 부모가 호응해주는 대신, 의사표현 기회 없이 주어지는 대로 받아야만 했던 환경이 쌍방향 소통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진단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나온 아이들은 결국 ‘느슨한 연결’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는 지난 1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서울 성북구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비영리 단체 ‘벗들의 벗’을 위한 공간이다. 조직의 규정이나 근무 시간에 얽매여서는 밤늦게 오는 아이들의 위급한 연락에 응답할 수 없다는 절실함으로 단체를 설립했다.
“정부 지원금은 받지 않고 100 후원금으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성과 중심의 보고서에 매몰되면 1년 안에 바뀌지 않는 아이들의 삶을 기다려줄 수 없거든요. 밤늦게 울적해 전화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벗들의 벗’은 자립이 특히 더딘 청년을 대상으로 일자리·주거·관계의 취약성을 보강하고, 쓰레기 집 개선사업도 이어갈 예정이다. 또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청년들이 출소 후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고, 산악회 활동을 통해 느슨한 연대도 구축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친한 형’ 역할이라고 했다. 세상을 혐오하던 아이가 1년 만에 채무를 해결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에서 그는 희망을 본다.
“이 아이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봐서도, 혼자 살지 못하는 취약한 아이로만 봐서도 안 됩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밖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거죠. 저는 이 아이들의 취약함, 약함이 좋거든요.”
박씨는 과거에 비해 늘어난 지원 제도가 역설적으로 아이들을 더 고립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가 퇴소할 때는 서로가 너무 취약했기에 오히려 더 끈끈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수당만으로 세상과의 교류 없이 혼자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경제적 지원은 늘었지만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옅어진 셈이죠.”
그에게 자립이란, 삶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 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립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준비청년 20명이 보호대상아동 80명의 멘토가 되어 활동 중인 틈틈 대표 신선씨. 멘토가 되어준 김성식 팀장의 저서와 편지를 들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의 멘토링 돕는 기업 ‘틈틈’ 대표 신선씨
아홉 살 때까지 새어머니만 다섯 번 바뀌었고, 아동복지시설에서도 15년간 수많은 생활지도 선생님과 이별했다. 신선씨에게 ‘어른’은 늘 떠나가는 존재였다. 스물넷, 세상에 홀로 던져졌을 때 그에겐 의지할 ‘어른’이 없었다. 신선 ‘틈틈’ 대표는 유년기 시절을 아동복지시설에서 보낸 자립준비청년 출신이지만 지금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언제든 연락해도 되는 어른 친구”가 돼주고 있다.
“정이 들만 하면 선생님들이 그만두시거나 반이 바뀌었어요. 후원자나 봉사자도 스쳐 지나갈 뿐이었죠. 유년기에 거친 양육자만 20명이 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게 됐어요. ‘이번엔 언제까지 있다 갈 거예요?’라고 묻는 게 습관이 된 아이들의 마음은 기대가 아니라 체념입니다.”
실제로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신 대표 역시 시설 퇴소 후 집을 구하고 공과금을 낼 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시간을 보냈다.
신씨가 설립한 기업 ‘틈틈’은 ‘관계의 틈’을 메우기 위해 존재한다. DB김준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자립준비청년 20명이 보호대상아동 80명의 멘토가 되어 활동 중이다. 멘토링은 특별하다. 단순히 공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고 바다낚시를 가며 ‘삶의 경험’을 공유한다.
“저희 멘토들은 활동이 끝나도 계속 연락하겠다는 서약을 해요. 정해진 기한이 없는 ‘어른인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곁에서 누군가의 정서적 지지와 기대를 많이 받는 아이들은 인정받으면서 더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신씨는 ‘잘 자립했다’는 말에 대해 여전히 고민이 많다. 과거엔 공무원이 되어 경제적으로 안착하는 것만이 자립이라 생각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고지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라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는 ‘엄마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이들에겐 그 ‘어깨너머’를 보여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혼자 해내려 애쓰지 않습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것,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진짜 자립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동정’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그저 각자의 사연을 가진 평범한 청년으로 봐달라”는 것이 그의 당부다.
인터뷰 끝자락, 그는 소중하게 간직해온 책 한 권과 카드를 꺼내 보였다. 아름다운재단 캠페인 시절 만난 김성식 팀장이 쓴 책과 편지였다. 편지에는 ‘실패해도 괜찮으니 안전한 틀 밖으로 나와 울고 웃으며 성장하라’는 격려가 담겨 있었다.
“그분은 제가 가진 틀을 깨주려 노력하셨어요. ‘너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준 단 한 사람의 어른 덕분에 제가 ‘틈틈’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죠. 있는 그대로 얘기해도 된다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테니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해 보라고요. 그 한마디가 저를 오늘날 자립준비청년들을 돕는 활동가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신씨는 보육원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 밖 청소년’들에게도 손을 내밀 계획이다. 믿을 만한 어른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아이들의 미래가 바뀐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때까지 저는 이들의 든든한 ‘어른 친구’로 곁에 남고 싶습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이정민 기자 jojo@cpbc.co.kr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한 건 ‘믿음’과 ‘온기’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는 믿음과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온기다. 각종 지원 정책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본당, 지역 사회의 촘촘한 그물망이 자립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있다.
1. 우리 동네 살펴보기
주변과 이웃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청년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혼자 지내는 청년 이웃에게 건네는 가벼운 인사나 명절의 작은 나눔은 그들에게 ‘이웃이 있다’는 작은 안도감을 준다. 쓰레기 집 거주, 고립사 등을 막는 방패는 이웃의 따뜻한 시선이다.
2. 본당에 ‘자립 훈련소’ 마련
각지의 본당 공동체가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실천은 안정적인 일터와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인천교구의 3개 본당은 운영 중인 카페를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자립 훈련소’로 활용하고 있다. 청년들이 손님을 응대하며 사회 경험을 쌓도록 장소와 기회를 마련해준다면, 단순한 일자리를 넘어 사회로 자립하기 전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된다. 가까운 우리 곁에 있을 그들에게 다가가는 든든한 ‘어른 친구’가 돼주는 것도 물론이다.
3. 단체 및 기관 후원하기
전문 지원 기관을 후원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자립준비청년의 주거비, 의료비, 긴급 생활비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나 사회복지법인에 정기 후원을 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 소비’에 동참하는 방법도 있다.
4. 동정보다 존중
자립준비청년들을 동정 대신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자립준비청년을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자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 평범한 존중이야말로 청년들이 밀림 같은 세상에서 스스로 일어나 걷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