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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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에서 교육자로… 방치된 학교에 ‘사람과 미래’를 심다

[삶의 자리에서] ‘학교법인 한빛학원’ 설립한 홍사건(요한 보스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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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한빛학원 홍사건(요한 보스코, 가운데) 이사장과 학생들이 벚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무 한 그루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다
17년간 대기업 근무·교육자 꿈 위해 퇴사
2000년 학교 인수해 법인 설립·운영 나서

가고 싶은 학교로 자리매김한 한빛고
바른 태도 익히는 차별화된 특성화 교육
홍 이사장, 공로로 작년 국민훈장 받아


4월 8일 개교 기념일을 맞은 대전한빛고등학교 본관 앞길엔 벚꽃이 만개했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벚꽃잎들이 반짝이 가루처럼 흩날리자 여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밀어 벚꽃잎을 잡아보려 총총거린다. 학교를 품은 산은 연둣빛으로 물들며 교정에 봄 기운이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학교법인 한빛학원 홍사건(요한 보스코, 75) 이사장 안내로 교정을 둘러보는 동안 마주치는 학생들은 어김없이 목례와 함께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이사장님!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홍 이사장에게 다가왔다. “저도 같이 찍을래요!”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과 홍 이사장은 벚나무 아래서 ‘인생사진’을 남겼다.

 
대전한빛고등학교 전경.


학습 환경 개선·교직원 채용 방식 변화

대전한빛고등학교는 올해 개교 26주년을 맞았다. 홍 이사장은 2000년 학교법인 한빛학원을 설립했다. 대전 외곽에 방치되다시피 한 고등학교를 인수해 한빛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운영에 나섰다. 당시 학교엔 변변한 나무 한 그루조차 없었다. 학교를 둘러싼 숲은 홍 이사장이 손수 일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주변 나무들은 제가 다 가져다 심은 겁니다. 학교에 처음 왔을 땐 정말 삭막했어요. 건물도 낡았고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나 싶을 정도였죠.”

홍 이사장의 손길을 거치면서 학교는 한 해 한 해 달라졌다. 교실이 늘었고, 체육관과 식당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기숙사(인재원), 체력단련실, 야외 학습장, 아트 플라자 등 대학 캠퍼스에 버금가는 공간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건물 곳곳은 리모델링을 거쳐 ‘에듀카페’ ‘로비라운지’ ‘디지털 북카페’로 바뀌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학습할 공간이었다. 운동장엔 인조 잔디가 깔렸고, 학교 주변엔 나무 수천 그루가 심어졌다. 덕분에 교내 건물 어디서든 창 밖으로 마주하는 풍경은 푸른 자연이다. 홍 이사장은 “학생과 교직원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데, 학교 환경이 가장 좋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변한 건 환경뿐만이 아니었다. 교직원도 새롭게 채용했다. 학연·혈연·지연으로 불거지는 사학재단의 비리 같은 건 처음부터 싹이 자라지 않도록 했다. 교장도 공모제로 뽑았고 모든 직원은 공개 채용을 원칙으로 했다. 우수한 교사 확보를 위해 학벌보다는 실력과 품성을 우선시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끊이지 않는 공사와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기존 교직원들의 반대와 불만도 컸다.

“변화엔 당연히 저항이 따릅니다. 원래 하던 대로 하면 편하니까요. 20년 전만 해도 저도 젊을 때라, 의욕이 넘쳐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한 조직이 성과를 내려면 인재가 있어야 하고, 또 이들이 일하기 위한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배운 경영 마인드가 학교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법인 한빛학원 홍사건(요한 보스코) 이사장.


서울과 대전 오가며 열정으로 학교 일궈

홍 이사장은 대학졸업 후 1977년 삼성그룹 제일제당(현 CJ)에 입사해 17년간 근무했다. 임원까지 달고 승승장구하던 때에 “꿈을 이뤄야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대학 시절에도 교직 과목을 이수하며 교사의 길을 준비했을 정도로 교육자로서의 삶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고향인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퇴직금을 합해 모아놓은 자금으로 집안에서 물려받은 염전 부지에 학교를 세우고 싶었지만, 설립 인가가 나지 않았다.

홍 이사장은 “고민 끝에 학교를 인수해 운영할 뜻이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청에서 연락이 와서 지금 자리에 있는 고등학교를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학교 운영에 나서면서 초창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울과 대전을 오갔다.

“새벽에 차를 끌고 내려와서 일을 보고 서울에 와서 한숨 돌리는데, 무슨 일이 생겼다 그러면 또 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땐 지치는 줄도 몰랐죠. 학교가 변하는 게 제 눈에 보이니까요.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습니다.”

 
(왼쪽) 과거 학교 전경 (오른쪽) 현재 학교 전경. 대전한빛고 제공
 
(왼쪽) 공간 조성 전 모습 (오른쪽) 새롭게 마련된 ‘에듀포레’. 대전한빛고 제공


몸과 마음 모두 성장하는 배움의 장

홍 이사장의 열정과 헌신만큼 학생들도 달라졌다. 학업 분위기가 조성되고, 교사들도 학생들을 세심하게 챙기니 대학 진학률은 물론 주요 대학 입시 결과도 해마다 좋아졌다. 지역 사회에선 대전한빛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학생들 사이에선 ‘가고 싶은 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선 ‘보내고 싶은 학교’로 입소문이 났다. 이제는 재학생 60 이상이 서울 지역 주요 대학에 진학하는 ‘명문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홍 이사장이 생각하는 ‘명문 학교’는 입시 결과 그 너머에 있다. 그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대전한빛고만의 차별화된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에는 그만의 교육 철학이 깃들어 있다. 홍 이사장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삶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배우고 서로 존중하는 법을 익히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해 가기를 바랐다.

이러한 홍 이사장의 바람은 전교생이 참여하는 태권도 시간과 산책(Eco-Healing Walking)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산책코스인 ‘세심로’(洗心路)는 마음을 닦는 길이라는 뜻으로 홍 이사장이 학교 뒤 부지에 나무를 심고 가장 양지 바른 곳을 택해 길을 내 직접 만들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함께 걸으며 어울리는 시간도 모두 배움의 여정”이라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관악부를 만들어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개최해왔고, 2014년엔 여자축구부를 창단했다. ‘인재원’이라 부르는 기숙사엔 전담 교사 4명을 배치해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물론 방과 후 학업과 진로 상담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홍 이사장은 202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면서 “학생과 교직원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감사했다”고 말했다.

“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훈장을 받으니 그동안의 애환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더 겸손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2010년에 서울 청담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신앙생활을 한 뒤론 삶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목표 지상주의로 뭐든지 밀어붙였던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됐고요.”

홍 이사장은 “지금까지 모든 것은 혼자 힘으로 이룬 게 결코 아니다”면서 “늘 함께해준 교직원들, 학교를 믿고 보내준 학부모, 열심히 따라 준 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학교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동안 그가 교정에 심은 건 나무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심고, 믿음을 심고, 교육의 미래를 심었다. 홍 이사장은 “열심히 일한 이사장, 학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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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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