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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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 읽는 삼위일체의 신비, 발트자센 카플 순례 성당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76. 독일 발트자센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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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자센 인근 글라스베르크(628m)에 자리한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 게오르크 딘첸호퍼가 1685~1689년 세운 중앙집중식 바로크 양식 성당으로, 세 개의 반원형 공간과 세 개의 탑, 세 개의 지붕탑이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현재는 뮌헨로이트 성 에메람본당이 순례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시토회 수도원의 도시 발트자센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카를스바트, 오늘날 체코의 카를로비바리를 몰래 빠져나와 마차에 오릅니다. 훗날 「이탈리아 기행」이 될 긴 여행의 출발이었습니다.

괴테는 정오 무렵 바이에른에 들어서며, 사방이 비옥하고 완만한 언덕들로 둘러싸인 발트자센 수도원과 처음 마주합니다. 거대한 수도원과 주변의 드넓은 농경지, 물줄기의 흐름을 관찰하면서도 과거 가톨릭 성직자들의 선견지명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평가합니다. 괴테는 발트자센 수도원이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삶을 일구고 가꿔 나가는 핵심임을 잘 알고 있었지요.

실제 발트자센(Waldsassen)은 시토회 수도원이 황무지를 개간해 발전시킨 도시입니다. 이곳의 이름부터가 ‘숲 속의 자리’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1133년 디폴트 3세 방백이 시토회 수도자들을 불러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고, 1147년 국왕 콘라트 3세의 보호와 특권을 받으며 제국 직속 수도원으로 성장합니다.

중세의 시토회 수도자들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숲을 개간하고, 연못과 물길을 다스리며 농경지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렇게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오늘날에도 이곳을 슈티프트란트(Stiftland), 곧 ‘수도원이 일궈낸 영지’로 불립니다.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 천장화. 1880년 화재 후 오스카르 마르틴이 1934~1940년에 새로 그린 천장화로 세 반원형 공간(Concha)이 정삼각형처럼 맞물린 중앙집중식 구조 위에 성부·성자·성령의 도상이 펼쳐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완성된 오른쪽 돔 성령 천장화는 전쟁 장면을 배경으로, 고통받는 이를 돕고 위로하는 그리스도인의 자비 실천을 함께 보여준다.

독창적 원형 구조의 바로크 양식 순례 성당

오늘날도 발트자센의 중심은 수도원입니다. 19세기 세속화 이후 수도원이 아니라 수녀원이 되었지만, 수도원 바실리카와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은 지금도 이곳의 얼굴로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신자라면 수도원의 매력에만 빠지고 돌아오면 아쉽습니다. 수도원에서 3.5㎞ 떨어진 언덕 위에 삼위일체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카플 순례 성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발트자센에서 카플 순례 성당까지 가는 길은 인기 있는 하이킹 코스입니다. 동네를 벗어나 숲 속으로 쭉 뻗은 길은 유모차도 갈 정도로 완만한 오르막길입니다.

숲속 묵주기도 기둥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는 길만으로 이미 순례자의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언덕길 끝 흰 벽에 검은 양파형 지붕을 얹은 카플 순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름은 소성당을 뜻하는 독일어 ‘카펠레’에서 유래했지만, 전혀 작은 성당이 아닙니다. 게다가 바이에른 북부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인 원형 형태의 성당입니다.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의 주 제대와 본랑. 붉은빛 스투코 대리석으로 꾸민 주 제대는 1700년 무렵의 작품. 제대화에서 옛 순례 소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수사의 기도에서 시작된 성지

발트자센 수도원이 세워질 무렵, 수도원의 평수사들이 이 언덕으로 나와 가축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일터의 한 나무에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화를 걸고 기도하곤 했지요.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12세기 후반에 성화를 보호하고 순례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목조 소성당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성지도 후스전쟁과 란츠후트 계승전쟁을 거치며 파괴되고 맙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사실상 폐허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 있었죠.

다시 삼위일체 신심의 불씨가 살아난 것은 17세기였습니다. 1644년에 치유의 기적 소식이 퍼지면서 순례자들이 다시 찾아왔고, 새 소성당도 세워졌습니다.

현재 원형 형태의 카플 성당은 17세기 후반 발트자센 수도원 재건과 같은 흐름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1685년 발트자센 수도원 재건에도 참여한 건축가 게오르크 딘첸호퍼가 공사를 맡았습니다. 그는 기존 소성당을 허물지 않고, 새 성당을 옛 소성당 바깥에 둘러싸듯 짓고는, 지붕과 궁륭이 완성된 뒤에야 옛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순례의 연속성을 끊지 않으려는 고민의 산물이었죠.
발트자센 시토회 아빠티스좌 수녀원(위)과 도서관(아래). 1133년 창립된 옛 시토회 아빠스좌 수도원이었으나, 1803년 세속화 정책으로 폐쇄된 뒤, ??1863년 재건되어 현재는 시토회 수녀들이 생활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으로 꼽히는 수도원 도서관은 18세기 초 오이겐 슈미트 아빠스 재임 중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졌으며, 카를 슈틸프의 목조 인물상과 천장화가 신앙과 학문의 세계를 함께 보여준다.

건축으로 이해하는 삼위일체 신비

카플 순례 성당 앞에 서면 ‘3’이라는 수가 먼저 떠오릅니다. 흰 벽 위로 검은 양파형 지붕을 얹은 세 개의 큰 원탑이 솟아 있고, 지붕 위에도 세 개의 작은 탑이 반복됩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이 상징은 더 분명해집니다. 성당은 장방형 구조가 아니라 세 개의 반원형 공간(Concha)으로 구성된 중앙집중식 구조입니다. 세 공간이 보이지 않는 정삼각형을 감싸듯 서로 맞물려 배치되어 있고, 각 공간의 천장화는 성부·성자·성령을 구현하고 있지요.

이는 단순히 기발한 설계가 아닙니다. 중세 성경 주해가 한 단어와 숫자에서 여러 층의 의미를 읽어내듯,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숫자 3을 건축의 문법으로 삼은 겁니다. 동쪽의 주 제대와 북쪽의 성가정 제대, 남쪽의 성모 승천 제대가 성당 중심을 향해 배치된 모습도 삼위일체를 상징합니다.

카플 순례 성당은 삼위일체 교리를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구별되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 신앙을 성당 전체가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성당 마당에 서면 슈티프트란트 특유의 구릉 지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너머로 괴테가 지나왔던 보헤미아의 숲과 국경도 어른거립니다. 괴테가 발트자센에서 수도원이 만든 땅의 질서를 보았다면, 카플에서는 신앙의 신비가 공간으로 해석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신비는 멀리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때로는 중세 평수사들의 일터 그림으로, 때로는 길에서 만나는 성당에서 체험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순례 팁>

※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발트자센까지 약 53㎞, 레겐스부르크/뉘른베르크에서 약 125~130㎞. 발트자센 시내에서 카플 순례 성당까지 약 3.5㎞(도보 약 40분). 발트자센 수도원 바실리카와 도서관을 먼저 둘러본 뒤, 순례 성당으로 이동. 성당 옆에 비어가르텐이 있다.

※ 카플 순례 성당 미사: 주일과 대축일 09:30 (주님 수난 성지 주일~모든 성일 대축일 전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의 ‘카플 축제’ 미사 09:30·11:00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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