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네덜란드에서 지내고 있다. 9년 전, 국제 구호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네덜란드인 안톤과 결혼해 이른바 ‘3·3·6 모드’로 산다. 1년 중 3개월은 한국,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같이 지내고 6개월은 각자 현장 근무를 하거나 제3국에서 만나 여행하면서 보낸다. 남편과 나는 직업이 같고 각자 100여 개국을 다닌 여행자이며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도 있어서 할 이야기도, 논쟁거리도 차고 넘친다.
우리 집은 네덜란드 남부 인구 4000여 명의 작은 마을에 있다. 마을 중앙에는 550년 된 고풍스러운 성당이 있는데, 한때 개신교 교회로 쓰이다가 나폴레옹 통치 때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돌아온 곳이다. 우리는 이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린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가끔 미사를 거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성당 종소리가 들릴 만큼 집에서 가깝고 안톤이 성가대원인 까닭도 있겠지만, 한국보다 네덜란드에서 더 열심히 다니는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니 해외여행 중이나 구호 현장에서도 주일미사를 좀처럼 빼먹지 않았다. 성당에 가기 힘든 상황일수록 더욱 애를 쓰며 찾아다녔는데 그게 번거롭기는커녕 오히려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었다. 특히 아프리카 오지나 무슬림 지역에서 어렵게 드렸던 미사는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남수단 남부, 수십 년째 내전과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땡볕에 한 시간 넘게 걸어 성당에 갔다. 의자가 부족해 아이들은 작은 플라스틱 의자를, 어른들은 나무 의자를 들고 구슬땀을 흘리며 줄지어 갔다. 손에는 미사예물로 드릴 망고나 달걀은 물론, 다리가 묶여 퍼덕거리는 닭도 있었다.
성당 안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가져온 의자를 마당에 놓고 미사를 드렸다. 나무 그늘은 아기와 노인들 몫인데도, 사람들이 번번이 나를 그쪽으로 밀어주었다. 미사 끝에 인도인 신부님이 축복기도를 하러 나오면,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느님의 은총이 저 사람들 머리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이라크 모술에서도 그랬다.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여러 종교 공동체가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숙소 근처 성당에서 예수님이 쓰시던 아람어로 매주 아름다운 촛불 미사를 드렸고, 치안 문제로 그 성당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미군이 본부로 쓰던 호텔에서 진중미사를 보았다. 미사 후엔 귀한 ‘미제 과자’가 나왔고 50도가 넘는 폭염에 호텔 수영장 찬물에 몸을 담그는 특혜까지 있어 일주일 내내 주일미사를 기다렸다.
이러던 내가 한국에 오면 마음이 느슨해진다. 길지 않게 한국에 머무는 동안 등산도 하고 가족 행사도 챙겨야 하니 어쩔 수 없다지만, 솔직히 그건 핑계다. 본질은 성당에 가기가 너무 쉬워 결핍이 주는 간절함이 사라진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열악하고 낯선 곳에서 더욱 뜨겁고 간절하게 미사를 드렸다. 신앙심은 어쩌면 편안함보다 결핍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3·3·6 모드’로 사는 게 내 신앙생활에도 최선일 것 같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