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 신부로 4년, 군종 신부로 5년간 살다가 인사이동을 받았다. ‘복흥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라는 것이었다. 성당은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내에 있으며, 관할 구역은 순창군 내 복흥면과 쌍치면 전체다.
부임하는 날, 시내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발이 날렸다. 전라북도 내에서는 꽤 고원에 속하는 해발 300m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점심쯤 도착해 보니, 신자 몇 분이 성당 앞에 계셨다. 저의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아 보이는 사목회 임원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주님께 물었다. ‘뭐 하면 되나요?’
이것저것 정리하고, 본당 교적과 기타 문서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사무장도 둘 수 없고, 교구나 다른 본당의 지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본당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신자 구성도 60~70대가 대다수이고, 심지어 90세가 넘는 분들도 몇 분 눈에 띈다. 반대로 20대 이하는 두 가족 4명. 9년 동안 젊은이(군인도 엄연한 청년)들 속에서 살다가 사목 방향을 180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평일 미사를 집전해 보니, 수녀님 세 분만 미사에 참여하셨다. “다들 바쁘셔서 안 오셨나 봐요”라고 물으니, “원래 저희끼리만 미사했어요”라고 하신다. 공소였던 곳이 15년 전에 본당으로 승격되어, 주일만 나오면 된다는 의식이 많으신 듯했다. 마치 군대의 병사들처럼⋯.
병사들이야 나올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인 게 얼마 안 되었는데, 또 다른 멘붕(멘탈 붕괴. 혼란 그 자체라는 소리)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러다가 십자가에 계신 주님이 보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니가 할 일이 있응게. 쪼매만 기다려 보랑게. 조만간 바빠질 것이여~.”
젊은 신부의 우당탕 시골 본당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죠? 다음 주까지 기다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