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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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의 신앙단상] 하느님과의 약속, 어떻게 지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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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집안에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하고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나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서서히 성당과 멀어졌다. 스스로 다시 성당을 찾게 된 것은 미국 로스쿨 유학 시절이었다. 타국에서의 고된 학업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자연스레 나를 성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당시의 나는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사를 거르는 주일이 더 많았다.

다시금 신앙에 매달리게 된 것은 미국 변호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던 시기였다. 초조한 마음에 매일같이 성당을 찾고, 미사에 자주 참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수용하고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주십시오”하고 담담한 척 기도를 올렸지만, 사실 내 마음속 진짜 기도는 따로 있었다. “하느님, 이번 변호사 시험에 합격만 하게 해주시면, 이 결과를 꼭 하느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절박함에 매달린 간절한 청원이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 결과를 확인하던 날, 나는 그토록 바라던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환희의 순간도 잠시, 덜컥 겁이 났다. ‘아, 내가 하느님이랑 약속했는데. 이 엄청난 약속을 도대체 어떻게 지키지?’ 불안한 마음에 엄마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괜찮다. 하느님께서 분명 기회를 주실 텐데 그 기회가 찾아왔을 때 모른 척 외면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다독여 주셨다.

엄마의 말씀처럼 기회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합격의 기쁨을 뒤로하고 치열한 구직 과정을 거쳐, 사회 초년생으로 밤낮없이 일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오더 오브 몰타 코리아’가 정식 창립을 준비 중인데, 로마에 있는 본부의 각종 규정과 지침서를 번역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게 된 것이다. 오더 오브 몰타(Order of Malta)는 9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가톨릭 평신도 수도회로, ‘신앙의 수호와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 대한 봉사’를 핵심 소명으로 삼고 있다. 부탁을 받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것이 바로 엄마가 말씀하셨던 ‘그 기회’라는 것을.

주말조차 업무에 매달려 있을 만큼 늘 시간이 부족했던 주니어 시절이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틈틈이 번역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감사하게도 오더 오브 몰타 코리아의 회원으로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과분한 제안을 받았다. 지침서와 규정들을 직접 번역하며 오더 오브 몰타가 가진 무게감을 잘 알게 되었기에, 과연 내가 회원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턱없이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부족하더라도 내가 이바지할 수 있는 몫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렇게 시작된 오더 오브 몰타 코리아 생활은 치열한 일상 속에서 자칫 잊기 쉬운 사랑과 헌신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여전히 시간에 쫓겨 사는 워킹맘 신세이지만, 나는 로스쿨 시절,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앞이 보이지 않았던 시절에 성당 귀퉁이에서 올렸던 그 절박한 약속을 매번 새롭게 되새긴다. 나의 부족한 재능이나마 기꺼이 나누며,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가톨릭 신앙인으로 살아가고자 다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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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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