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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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의 신앙단상] 십자가의 무게를 견뎌낼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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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임과 결정이 뒤따르는 업무를 하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듯 막막하고 두려운 순간들을 수시로 마주하게 된다.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건 앞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 때, 혹은 쏟아지는 업무의 압박감에 짓눌려 스스로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낄 때면 나는 자연스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느님께 바쳤던 기도는 늘 한결같았다. “하느님, 이 복잡한 문제가 부디 순조롭게 해결되게 해주세요.” “제 앞에 놓인 이 거대한 장애물을 단숨에 치워주시고, 두려운 이 상황이 그저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세요.”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게 닥친 두려움과 어려움을 마술처럼 말끔히 없애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었고, 때로는 고단하고 지친 일상을 향한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기도 했다. 스스로 감당하기 벅찬 현실 앞에서 나는 회피라는 가장 쉬운 답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염수정 추기경님께서 주례하시는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날 추기경님께서는 강론 중에 ‘십자가’에 대한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십자가를 피하거나 당장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그 십자가를 짊어진 상처 많고 버거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깊은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지금껏 내 어깨에 얹어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고 버겁다며, 제발 이 십자가를 치워달라고, 내 눈앞에서 없애달라고만 기도해왔다. 하느님께서 내 삶에 허락하신 몫이자 나를 영적으로 단련시키는 귀중한 과정임에도,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하며 걷기보다는 그저 상황이 편안해지기만을 바랐다. 내가 정작 청해야 했던 것은 ‘십자가를 없애달라는 요행’이 아니라, ‘그 십자가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함과 용기’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물론 삶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찾아올 것이다. 여전히 치열한 일터에서는 단번에 풀기 어려운 숙제들을 마주할 것이고,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는 고단함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사를 다녀온 그날 이후, 기도의 방향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제는 내 앞에 놓인 문제를 치워달라고 떼를 쓰는 대신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을 직면하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굳센 힘을 달라고 기도를 청하게 된다.

어쩌면 그 전까지의 나는 십자가가 없는 평온한 상태만을 완벽 또는 완성으로 여기고,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나의 불완전한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짊어진 이 불완전하고 초라한 모습 그대로도 하느님은 나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외롭지 않게 나와 함께 그 무게를 견뎌주신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십자가가 없는 가벼운 삶이 아니라, 십자가의 묵직한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고 잘 견디어 내는 삶. 두려움 앞에서도 묵묵히 내게 주어진 몫의 십자가를 지고 걷는, 조금 더 성숙하고 단단한 신앙인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기를 오늘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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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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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6. 9. 16

시편 51장 12절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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