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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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내년에 꼭 봬요”… 92세 어머니 떠나온 김하종 신부

사랑하는 이를 뒤로하고 다시 가난한 이들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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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내년에 보든지, 하늘나라에서 보자.” 김하종 신부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이탈리아 고향집에서 92세 노모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30여 년간 성남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켜온 김하종(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신부. 1998년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열어 노숙인과 위기 청소년 등을 돌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김 신부가 1년에 한 번 짬을 내 찾는 곳이 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 이탈리아다. 지난 7월에도 고향을 찾아 홀로 지내는 92세 어머니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아들의 마음과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내년에 보든지, 하늘나라에서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한가위를 맞아 김 신부가 어머니와의 작별에서 느낀 아픔과, 사랑하는 이를 뒤로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던 사제의 소명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김하종 신부 글 전문

안녕하세요


한가위를 맞아 가정에 건강과 평안,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저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미리 고향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휴가의 마지막 순간, 무거운 여행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를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다시 여행가방을 들고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딸깍’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 문 뒤에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니는 이제 아흔이 넘으셨고, 건강도 좋지 않으십니다. 홀로 지내고 계십니다.


저는 장남으로서 어머니 곁에 머물며 부양해야 할 사람입니다.


뒤엉킨 생각과 솟구치는 감정이 저를 압도했고 눈물이 조용히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이제 이런 작별에 익숙해져야할텐데, 어떤(종류의)고통에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것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십니다.

그분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을 맞이하고 도와주고 사랑하도록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엄마, 사랑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제자들을 이끌고 길을 떠나십니다.



“가자. 나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해야 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의무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에 온 존재를 다해 응답하고자 하는 ‘거룩한 당위’, 곧 ‘신적 필연성(necessità divina)’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가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밖에서 강요된 규칙에 마지못해 복종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내맡긴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


평화와 사랑, 보편적인 형제애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구원 계획과 온전히 하나로 일치시키는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 길 끝에 고통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가십니다.


저 역시 때때로 머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습니다.


어머니 곁에 머물며 손을 잡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그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가자.”


그래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배운 그 사랑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아픔을 품은 채, 또 다른 외로운 이를 만나고, 굶주린 이를 맞아들이고,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고,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저는 다시 떠납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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