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이 지난해 6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되고 올해 8월 27일 추기경에 서임된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12월 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교계 안팎 언론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휴가를 맞아 11월 30일 한국에 입국한 유흥식 추기경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으로 봉직한 1년 6개월 동안의 소회와 최근 ‘10·29 참사’, 교황의 방북 가능성, 성직주의 극복 방안, 2023년 한국-바티칸 수교 60주년의 의미, 성직자부 향후 추진 사업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유 추기경은 기자회견 시작과 함께 10·29 참사를 언급하고 “교황청에서 일하는 추기경님들과 교황님께서도 10·29 참사 소식을 접하고 놀라움과 함께 애도를 표현했다”며 “한국이 디지털 분야에서 앞서가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저개발국에서나 일어날 듯한 참사가 발생해 교황청에 계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 자기 임무에 충실했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적당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이런 참사로 이어진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저 역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고, 한국 사회가 보다 정직하고 투명한 곳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 추기경은 오랜 동안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르며,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님은 지난 8월 24일 교황청에서 KBS와 인터뷰를 하시면서 공식적으로 방북 의지를 표명하셨고, 지금까지 북한에서 대응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북한도 어려움이 있을 때, 교황님 방북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황님께서 북한을 방문하신다면 북한이 다른 나라로부터 받는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인도적 대북 지원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유 추기경은 교황청의 대북 지원 사업과 관련해서는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 교황청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대북 지원은 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며 “6·25전쟁 때 외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던 한국교회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정신으로 이제는 세계 인류를 위해 베푸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세계주교시노드의 주요 논의 주제 중 하나인 ‘성직주의’ 극복 방안과 관련해 유 추기경은 “성직주의는 정확히 표현하면 ‘성직자 중심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제는 근본적으로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운 존재이지 잘나서 사제가 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제는 공동체의 아들이자, 친구, 동료 그리고 아버지이기도 한데 공동체의 아버지라는 점만 강조되다 보니 성직주의 문제가 나타난다”면서 “복음을 사는 데서 사제의 길은 시작되고 사제들이 이웃과 친교를 이루면 성직주의는 극복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유 추기경은 내년 한국-바티칸 수교 60주년의 의미를 “교황청은 신생 한국정부를 인정해 한국이 세계무대에 나아가는 데 큰 기여를 했고, 한국-바티칸 수교 60주년이 되는 내년 교황청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석상을 설치하게 돼서 더 뜻깊다”고 밝혔다. 아울러 성 김대건 신부의 삶을 그린 영화 ‘탄생’ 시사회가 11월 16일 교황청 뉴 시노드홀에서 열려 교황과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소개하며 “‘탄생’에 대한 교황청의 큰 관심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등 한국교회가 추진 중인 시복시성 사업에도 직간접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 추기경은 내년 교황청 성직자부 추진 사업을 묻는 질문에는 “성직자부에 각계 유명 인사들로 이뤄진 자문단이 있고, 추기경과 주교들로 구성된 위원단도 있지만 실제 회의가 열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내년에는 자문단과 위원단 회의를 열어 성직자부 운영에 관한 많은 조언과 협력을 얻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유흥식 추기경은 1년 6개월 동안 성직자부 장관으로 일해 온 소회에 대해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황님의 장관직 제안을 수락했다”며 “추기경이라는 권위가 업무 수행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추기경이 아닌 ‘돈 라자로’(Don Lazzaro, 라자로 신부)로 불리며 겸손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