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가 조선대목구 초대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와 서울대교구 제11대 교구장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한국 순교 복자 가족 수도회 설립자 방유룡(레오) 신부의 시복시성을 추진한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욥 주교)는 3월 23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제11차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회의를 열고 이들의 시복시성 추진을 선언한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는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세 분의 시복시성 추진 문제에 대해 숙고하면서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청취해왔다.
다양한 건의 내용을 바탕으로 후보자들 덕행의 영웅성과 명성(평판)의 지속성에 대해 검토한 뒤 한국교회와 신자들, 수도회와 회원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에 시복시성 추진을 결정했다.
서울대교구 초대교구장이기도 한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는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활동할 당시, 박해로 어려움을 겪는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되길 자원했다. 이후 1831년 교황청에서 조선대목구(교황 직할 교구)를 설정하면서 브뤼기에르 주교를 조선의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곧바로 조선으로 향했지만, 입국을 목전에 두고 피로와 병고를 이기지 못해 중국의 한 교우촌에서 선종했다.
이후 서울대교구는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해 유해 송환을 추진,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지에 안장했다.
서울대교구 제11대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은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후 1998년 퇴임까지 30년을 교구장으로 사목했다.
개인적인 덕행의 모범, 한국교회의 성장과 위상을 높인 공헌,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공헌 등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 살았던 그의 삶은 교회를 넘어 시민 사회 안에서도 울림을 전했다.
방유룡 신부는 한국 순교 복자 가족 수도회 창설자로, 수녀회(1946년), 성직 수도회(1953), 재속회(1957년), 빨마 수녀회(1962)를 차례로 설립했다.
방 신부는 박해로 순교한 한국 순교자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었다.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과 일치극치의 사랑을 한국적 정서로 표현한 점성, 침묵, 대월을 통한 ‘면형무아’로 나아가는 영성 수련 체계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순교 복자 가족 수도회는 한국 순교자들의 삶과 그들의 순교에 녹아있는 하느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면서 순교자 현양 사업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 79위 복자(1925년 시복) 이후 24위 복자(1968년), 103위 성인(1984년), 124위 복자(2014년) 시복시성의 밑거름이 됐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