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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 부부 묘, 성 베네딕도회 묘지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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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구상 시인(요한 세례자·1919~2004) 의 묘가 그의 친정과도 같은 낙동강변으로 이장됐다. 구상 시인의 딸 구자명(임마쿨라타) 소설가와 사위 김의규(가브리엘) 화백은 11월 18일 오후 3시 구상 시인과 부인 고(故) 서영옥 여사(마리아 데레사·1919~1993)의 유해를 경북 칠곡군 천주교 창마묘지에 이장했다. 이장 예식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례로 거행됐다.

박 아빠스는 “창마묘지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선종하시면 모시는 곳으로, 공동체 회의를 거쳐 구상 선생님 역시 우리 묘지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정을 했다”며 “구상 선생님 집안과 우리 수도원은 서울 백동(현 혜화동) 시절부터 북한의 덕원, 그리고 왜관까지 3대가 함께하며 도움을 주고받은 소중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결정에는 내년이 구상 시인 선종 20주기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구상선생기념사업회는 20주기가 되는 내년 5월 11일을 전후해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 계획도 세우고 있다.

구자명 소설가는 이번 이장에 대해 “창마묘지에는 아버님께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 왜관에 정착하면서 교류한 분들도 묻혀 계신다”며 “고향분들, 동네분들 다 함께 계시면서 하늘나라에서 천상복락을 누리시게 될 것 같아 매우 뜻깊다”고 밝혔다.

구상 시인은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한 구도(求道)를 시(詩)에 담아냈던 작가로, 성 베네딕도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19년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구상 시인은 네 살 무렵부터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이 자리한 덕원에서 자랐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다섯 살에 성 베네딕도회 부설 소신학교에 입학했지만, 3년 만에 중퇴했다. 그러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몸담았던 성 베네딕도회는 그에게 문화적이고 영성적인 자양분을 줬다. 특히 그의 형 고(故) 구대준 신부(가브리엘·1912~1949?)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시복 절차를 밟고 있는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에 포함돼 있다.

1947년 월남한 구상 시인은 이후 부인과 함께 성 베네딕도회가 월남해 자리잡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과의 유대가 다시 이어졌다. 내과의사였던 서영옥 여사가 운영하던 ‘순심의원’과 자택 ‘관수재’가 위치한 낙동강변은 그가 시를 구상하는데 환경적 영향을 끼쳤다. 순심의원 자리는 훗날 지금의 ‘구상문학관’으로 조성됐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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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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