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에게 중형을 부과하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을까.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예고한 가운데 범죄 사건에 가려진 인간의 존엄성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선태 요한 사도 주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11월 14일 서울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8월 14일 법무부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상황에서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갔다.
종교·인권·시민단체는 범죄 원인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중형주의에만 의존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구금된 형태의 사형’ 부활로 야기되는 인간 존엄과 가치 침해를 우려하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위원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인간의 자유를 영구적이고 절대적으로 박탈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 침해를 금지하는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과 충돌한다”며 “수형자들을 사회적·심리적으로 황폐화시킬 수 있고, 사회 공동체에서 영원히 단절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석방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종신형은 교화 및 개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서 수형자의 사회복귀라는 교정 이념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부산과학기술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이덕인 교수는 현행 무기형제도의 가석방에 관한 오해를 풀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 교수는 “무기형 수형자가 일정 기간 복역을 마치면 모두 가석방 심사의 대상이 된다거나 무기형 수형자가 많이 가석방된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2022년 기준 가석방 인원 1만 310명 가운데 무기형 수형자는 16명이며 이는 무기형 수형자 1313명 가운데 1.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종신형의 창설을 성급히 서두르기 전에 현행의 무기형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토대로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점을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수렴하면서 그 결과가 요청하는 바를 먼저 수정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미 사형을 법정형으로 두고서 이에 비견되는, 아니 그보다 더 엄혹한 형벌을 창설하려는 것은 단숨에 죽이는 방식과 서서히 죽이는 방식을 취하는 두 종류의 사형을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종신형의 도입은 사형폐지를 동반하는 것이어야 하고 종신형의 실제 도입이 인간성을 파괴하거나 오히려 사회복귀를 어렵게 만드는 비인간적 처우가 아니라고 하는 인식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