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연락이 끊기고 심한 당뇨합병증으로 한 쪽 다리가 절단된 채 서울 영등포의 한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이종천(70)씨는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70년 세월이 야속하지만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는 거동조차 할 수 없고 손에는 돈 한푼 쥔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아 야속하다.
이씨는 1954년 서울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5살 무렵 부모님과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학급 회장을 맡기도 하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일용직으로 일하며 가족들 생계를 도왔다. 군복무를 마친 뒤 중동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1977년부터 5년간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중동에서 번 돈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남기고 모두 가족에게 보냈다. 자신은 힘들게 생활해도 가족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하고 싶었다.
중동에 다녀온 후에는 1983년 돈을 벌 생각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뒤 택시 운전사, 샌드위치 장사 등을 하며 돈을 모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198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당시 다니던 교회 목회자 소개로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해 자녀를 하나 낳았다. 그러나 성격 차이로 2000년 이혼 후 전 배우자가 자녀를 양육하게 되면서 관계가 단절됐다. 이후 좌절감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는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연락이 끊어졌고, 4년 전부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택시 운전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겨우 하루하루 생활하느라 지병인 당뇨병 관리를 하지 못한 이씨는 2022년 당뇨합병증이 악화돼 왼쪽 엄지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커져 2023년 10월 관광비자로 한국에 왔다. 수중에 있던 200만 원으로 귀국해 부산의 허름한 모텔에 거주하며 가족과 친지들을 찾았지만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텔 주인 할머니가 이씨를 딱하게 여겨 먹을 것을 챙겨주던 중 방 안에서 악취가 나 확인해 보니 이씨의 왼쪽 발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후 이씨는 부산백병원에서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다리 절단과 가족과의 연락 두절이 겹쳐 절망과 우울감이 날로 커졌다.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던 이씨는 부산백병원의 도움으로 서울 성가복지병원에 전원했지만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의료원으로 다시 전원했다. 해당 병원들에서는 최대한 복지혜택을 부여하려 노력했고 현재는 2월 14일부터 영등포의 한 요양병원에서 “진료비 부담이 있긴 하지만 오갈 데 없는 환자를 우리가 맡겠다”며 보호하고 있다.
이종천씨는 “내가 젊었을 때 생계를 도왔던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건강을 회복해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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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