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6월 18일 전국적인 집단 휴진을 예고한 가운데,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가 의료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호소문을 17일 발표했다.
‘이 땅 저 멀리서부터 내 딸 내 백성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구나’(예레 8,19) 제목의 호소문에서 이용훈 주교는 “의과 대학 입학 정원 증원 정책을 둘러싸고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정부와 의사 단체 그리고 사회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이제 ‘집단 휴진’이라는 극단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미 4개월 넘게 이어지는 의료 공백 사태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수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 이 주교는 “적절한 진료와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가 악화한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업계 종사자와 관련 직군 종사자의 근무 환경과 생계에도 심각한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주교는 “오늘의 사태는 나와 상관없는, 언론 보도에나 나오는 멀리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 사회의 생명이 달린 엄중한 사안”이라며 “갈등 상황이 계속될수록 피해를 입는 가족과 이웃의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주교는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와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 단체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상대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키우기만 할 뿐”이라며 “지금의 상황이 누구 책임인지, 누구 탓이 더 큰지를 묻는 것도 현재로서는 의미가 없으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라는 진술을 양편 모두 명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집단 휴진이 실시되고 이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비롯한 기본권이 더 심각한 상해를 입는다면 이는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 아닌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의 책임이고 탓”이라고 전했다.
‘격한 대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말할 때 명확하고 숨김없는 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26항을 인용한 이 주교는 “정부는 정부대로,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있는지, 자신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성찰하고 명확하고 숨김없는 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정부와 의사 단체에 호소했다.
이 주교는 호소문을 마무리하며 “구체적인 길은 서로 다르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부와 의사들 모두 같다”며 “이제라도 이 가장 단순한 진실과 초심으로 돌아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것을 양편 모두에게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불거진 의료공백 사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집단 휴진 철회 조건으로 제시한 의대 증원 재논의 등의 대정부 요구안을 정부가 즉각 거부함에 따라 6월 17일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18일에는 대한의사협회 차원의 집단 휴진이 예고되며 의료 대란 현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편 이용훈 주교는 의대 정원 문제로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불거진 지난 2월 26일 ‘인간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목의 담화를 발표, “정부와 의료계는 국민과 환자들의 건강한 삶을 염두에 두고 열린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