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은 중국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의 축일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이날 중국 순교 성인들을 기념한다. 한국교회 역사는 중국에서 비롯됐고, 한국 신자들이 박해를 받던 시기에 중국에서도 박해가 가해지고 있었다. 비슷한 박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웃 중국교회의 순교 성인을 대표하는 성 자오룽(趙榮) 신부의 발자취를 알아본다.
성 자오룽 신부는 1746년 중국 구이저우(貴州)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성은 주(朱)씨였다. 천주교를 접하기 전 방탕한 생활을 하던 그는 20세에 구이저우성 우촨(?川)에서 무보수 노동인 차역(差役)에 동원돼 옥졸로 일하게 됐다.
이때,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모예(Jean-Martin Mo?e, 梅慕雅, 1730~1793) 신부가 우촨 사람들에게 전교를 하다가 체포돼 감옥에 갇히면서 자오룽과 만남이 이뤄졌다. 모예 신부는 감옥에 갇혀 있던 많은 죄수들을 감화시켰고 자오룽 역시 모예 신부의 교리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아 믿게 됐다. 모예 신부는 1776년 감옥에서 나오자 자오룽에게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와 견진을 주었다. 또한 자오룽의 신앙이 굳건한 것을 알아보고 라틴어를 가르치면서 성인들의 삶을 배우라고 권유했다.
자오룽은 모예 신부의 기대에 부응해 35세 때인 1781년 음력 5월 10일 사제품을 받으면서 성을 주씨에서 조씨로 바꾸었다. 사제가 된 자오룽은 처음에 윈난(雲南) 산골 지역에서 전교를 하다 쓰촨(四川) 서부 지역을 관리하라는 주교의 명을 받았다. 쓰촨에서 병세가 위독한 한 교우를 방문하러 가던 중 사제 신분이 노출돼 관에 체포되고 말았다. 관에서는 자오룽 신부에게 배교를 강요했지만 “중형을 즐겁게 참고, 배교라는 말은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다”며 신앙을 지켰다. 69세로 이미 연로한 나이였던 자오룽 신부는 모진 매와 가혹한 고문을 참아 내다 1815년 1월 27일 순교했다.
자오룽 신부는 1900년 5월 27일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됐고, 2000년 10월 1일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19위와 성인품에 오르면서 중국 순교 성인들을 대표하게 됐다.
자오룽 신부가 성인품에 오르기 전에는 1996년 6월 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1840년 순교한 라자로회 출신 프랑스인 페르부아르((Jean-Gabriel-Perboyre, 董文?) 신부가 중국교회 첫 성인으로 탄생한 바 있다. 성 자오룽 신부와 동료 순교자 120위 축일은 처음에 9월 28일이었다가 2002년 교황청 경신성사성(현 경신성사부)이 7월 9일로 변경해 전 세계 교회가 경축하도록 했다.
중국교회 121위 성인 중 87위는 중국인, 34위는 외국 국적 선교사로, 주교 6위, 사제 24위, 수사 8위, 수녀 7위, 예비 신자 포함 평신도 76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