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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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부활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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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신앙으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갑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부활 아침에 울려 퍼진 천사의 이 말은 그때의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과 역사를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힘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갈등을 넘어 평화로 이끄는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는 아직도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손길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몇 년에 걸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이어지고 있고, 미얀마를 비롯해 내전에 휩쓸린 여러 나라들의 상황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많은 사람이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어둠의 골짜기를 걷고 있습니다. 왜 이리도 인간들은 전쟁의 광풍에서 벗어나지를 못할까요?

 

우리 제주 땅에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역사가 있습니다. 제주 4·3의 비극입니다. 당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대다수 가정이 깊은 상처를 품고 오랜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아픔은 단지 과거에서 끝난 게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 기억을 증오와 분열의 기억으로만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제주의 많은 사람들은 눈물 속에서도 화해를 선택했고, 상처 속에서도 평화를 향해 걸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십자가의 어둠을 지나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듯이, 우리의 역사도 상처를 넘어 희망의 역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제주는 오랫동안 “평화의 섬”으로 불려 왔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기억을 통해 배우고, 대화를 통해 만들어 가며, 용서를 통해 완성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부활의 첫 메시지는 바로 평화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평화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도 여전히 많은 갈등이 존재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가 계속 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 제주 역시 제2공항 건설에 따른 대립과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전국 이혼율 1위, 전국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심각한 지표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적 문제와 갈등 속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처절히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한 가지 길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참된 평화를 만드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진정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갈등을 넘어서는 사람입니다. 제주교구는 오래전부터 생명과 평화를 위한 순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특별히 4·3과 강정 해군기지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화해와 치유를 위한 기도를 이어왔고, 사회문제들의 장벽 앞에서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순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순례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순례는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화되는 체험입니다. 아픈 기억이 화해로 바뀌고 상처가 치유로 바뀌며 갈등이 평화의 사명으로 바뀌는 길입니다. 그래서 제주교구의 평화 순례는 부활 신앙을 삶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길입니다.

 

또한 부활 신앙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향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제주의 자연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귀중한 선물입니다. 바다와 오름, 숲과 돌담,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생명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부활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으로 증언해야 할 신앙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용서할 때 부활이 드러납니다. 또한 우리가 사회 안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할 때 부활의 빛이 세상에 비추어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우리를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제주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의 신앙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뜨도록 요청합니다. 상처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게 하고, 갈등의 현실 속에서도 평화를 선택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신앙으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갑시다. 그래서 이 제주 땅이 상처를 넘어 치유로, 갈등을 넘어 화해로,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평화의 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이 제주 땅 위에 풍성히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2026년 부활절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창우 비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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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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