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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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부활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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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사랑하는 우리 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빛으로 어둠을 가르시고, 생명으로 죽음을 넘어오신 주님의 부활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오늘 교회가 노래하는 이 기쁨은 단지 한 사람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났다는 경이로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오래도록 약속하신 마지막 시대의 구원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길고도 지난했던 인간의 역사, 그 안에 쌓여 온 허물과 결핍, 상처와 눈물, 죄와 단절의 시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응답이 부활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역사의 가장 어두운 자리까지 내려가셨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사랑이 마침내 인간의 흠결과 실패보다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은 역사 안에서 서로를 아프게 했던 수많은 갈등과 대립, 상처와 슬픔이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상처 없는 몸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못자국이 남아 있는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더 이상 죽음의 흔적 아니라 사랑이 끝내 패배하지 않았다는 생명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있고, 아직 화해하지 못한 기억이 있으며, 오래된 오해와 미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은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사랑 안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는 깊은 대립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계엄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날카롭게 갈라졌고, 극단의 언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곧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 신앙은 편을 갈라 적개심을 키우는 비겁함이 아니라, 진실 안에서 화해를 모색하고 정의 위에서 공동선을 세우려는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등의 시대 속에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화해와 일치는 진실을 희생하여 얻는 값싼 평화여서는 안됩니다. 정의 없는 화해는 오래가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한 일치는 결국 더 큰 균열을 남깁니다. 우리는 극단적 분열을 부추기는 왜곡된 정보와 거짓의 언어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뜨거운 열심만으로 복음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교회의 정통 신앙을 자기 확신과 만족의 도구로 바꾸는 그릇된 신심들에도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신앙은 누군가를 정죄하는 무기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신을 먼저 성찰하고 이웃을 살리는 길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사변적 교리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불의에 침묵하지 않을 때,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 상처 입은 이들의 곁에 머물 때, 부활은 오늘도 살아 움직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 세상 안에서 숨 쉬게 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기도 합니다. 정의를 향한 작은 결단, 진실을 붙드는 양심, 서로를 사람으로 존중하려는 인내, 그것이야말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다시 걸으시는 길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을 축하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와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위로가, 거짓이 흔드는 곳에 진실이, 증오가 자라는 곳에 사랑과 정의가 더 깊이 스며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본당에서, 일터와 사회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의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굴곡진 삶의 자리마다 주님의 생명이 번져 가고, 사랑과 정의가 필요한 곳마다 우리 교회의 발걸음이 더욱 담대하고 따뜻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에 참된 평화와 희망을 가득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26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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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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