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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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부활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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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십자가상 죽음으로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와 다시 화해시켜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알렐루야!

 

유다 지도자들의 모함으로 예수님께서 로마 병사들에게 붙들려 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 사도만이 예수님 뒤를 따라갔지만, 밤새 세 차례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언을 듣고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또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처음 건네신 말씀이 평화의 인사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세 차례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라고 선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을 평화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평화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 상태를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숨을 받아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죄와 연루되지 않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한 형제로 서로 사랑하며 살면서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세상을 잘 돌보는 것이 평화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하느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을 떠난 인간에게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시작하신 구원경륜은 죽음이 지배하는 죄의 역사를 다시 하느님 품 안으로 회복시키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긴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메시아를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와 그분이 맺어주실 새 계약을 기다렸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시어, 이제 그분이 가시는 길은 우리도 갈 수 있게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죄를 당신 몸에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태초에 원하셨던 하느님 닮은 인간의 모습을 회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일은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 년 전 이사야 예언자가 이미 알려준 소식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 53,4-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화에 이르셨고, 그 평화를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사도들을 통하여 주님의 평화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화의 은총을 받으신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의 사도입니다. 평화는 하느님과의 화해이며, 이웃 형제자매들과의 화해는 물론 모든 피조물과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희생하여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한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싸움과 전쟁은 화해와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의 삶이 아닙니다.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해 주시고, 슬퍼하는 이웃과 함께 울어 주십시오. 지금도 국제사회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혹은 권력자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평범한 시민 특히 어린아이들까지 희생시키면서도 아무런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춘계주교회의에서도 이런 상황에 아픈 마음으로 동참하면서, 신자 여러분에게 단식과 기도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함께 해주실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지구 생태계 역시 우리 인간과 화해를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당신을 닮은 우리에게 모든 피조물을 맡기셨습니다. 생태계 파괴의 주된 원인은, 보다 편리한 삶에 대한 욕망과 그에 상응하는 돈벌이입니다. 우리는 조금 천천히 조금 불편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삶을 위해서도 유익합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피조물을 돌보아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 모습을 보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로 구원받은 부활의 증인이며 평화의 사도입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부활의 기쁨을 전하고 진정한 형제애로 평화를 이루십시오. 지구 생태계도 하느님 자녀들의 자비로운 손길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부활을 온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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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너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해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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