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통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한 모든 분께 주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총과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1. “주간 첫날이 밝아올 무렵”(마태 28,1)
“주간 첫날이 밝아올 무렵” 두 여인이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시간, 아니 어둠이 가장 짙게 내려앉는 밤의 끝자락에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 밤을 가득 채운 어둠은 인간 삶에 깃든 어둠, 세상에 깃든 어둠 곧 인간 본성의 나약함과 비참함으로 인해 절망으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처럼 되어서”(창세 3,5) “하늘까지 닿는”(창세 11,4) 힘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나약한 우리는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로마 7,19) 죄악을 행하며 비참한 죽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불의와 사악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고,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덕”(로마 1,29)이 끊이지 않는 세상을 마주합니다. 개인의 갈등과 폭력, 나라 간의 분쟁과 전쟁이 사라지는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예레 14,19)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합니다. 나약함과 불완전함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지고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폭력과 전쟁으로 드러나며, 죽음의 공포가 벗어 버릴 수 없는 짐처럼 우리를 짓누를 때 어둠은 여전히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그 밤의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죄악이 선사하는 이 어둠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혀계신 이 밤에, 인류를 더 무겁게 짓누릅니다.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허무 앞에서, 큰 돌로 막혀 있는 무덤은(마태 27,60 참조)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상,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을 상징합니다. 무덤을 막은 돌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울부짖음을 듣지도, 응답하지도 않으시는 ‘하느님의 침묵’을 떠오르게 합니다.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루카 1,79)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 듯한 ‘하느님의 부재(不在)’가 무덤을 통해 “죽음의 승리”(1코린 15,55 참조)처럼 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굴욕적인 수난과 완전한 패배로 보이는 십자가상 죽음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구원의 길임을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어둠으로 가득한 이 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느님의 침묵만이 가득한 밤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구원의 밤이요 거룩한 밤입니다.
2.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이 거룩한 밤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살아나셨습니다. 우리를 소멸과 허무로 이끄는 죽음의 어둠은 그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1코린 15,54-57 참조). 이제 “의로움의 태양”(말라 3,20)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 “죽음의 그림자”(마태 4,16) 속에 있는 이들에게 참된 구원의 빛으로 떠오르십니다. 어둠은 물러가고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2코린 4,6)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와 무덤을 거쳐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건너갑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하며 주님의 파스카를 기념”(파스카 성야 전례 9항)하는 이 거룩한 밤에, 우리는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갑니다.
세례로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한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을 분별하며 “선과 의로움과 진리”를 살아가야 합니다(에페 5,9-10 참조). 하지만 세상의 거센 풍파와 위세 앞에서 나약한 우리는 또다시 죄악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여전히 “무지와 완고한 마음으로” 죄의 종으로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에페 4,18 참조),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의로움 속에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로마 5,21 참조). 그래서 우리는 이 거룩한 밤에 그리스도의 빛으로 “마음과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 주시기를, “영원한 빛의 축제”로 건너가기를 청해야 합니다(파스카 성야 빛의 예식 참조). 그리고 두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헤어날 수 없는 어둠이 짓누를 때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3.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갈릴래아”로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8,7.10 참조). 갈릴래아는 고된 밤샘 노동이 있는 곳(루카 5,5참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이 사는 곳(마태 4,23), 마귀 들린 이들이 사는 곳(마르 1,39), 배고픔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이 있던 곳(요한 6장 참조)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한복판이 “갈릴래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 생명을 목말라하는 우리 삶 한가운데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과 죽음, 두려움과 고통에 함께하시며 참된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갑시다. 세상이 현혹하는 재물과 권력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갑시다. 세례성사로 주님의 죽음에 참여하였으니,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시기 질투와 미움, 탐욕과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의 부활로 밝혀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 살아갑시다.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4)으로 화해와 용서, 선(善)을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총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되찾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