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라고 인사하시면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같은 인사를 하시면서 다가오십니다. 그분이 주시는 평화가 봄 햇살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또한 봄이 겨울을 물러가게 하듯이 평화의 주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그리고 온 세상에서 미움과 증오와 폭력을 몰아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현재의 세계 상황을 보면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기원하게 됩니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이어서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해당 지역을 넘어서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로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지만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라는 교황님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상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고, 희생자 가족의 “울음소리와 애끓는 통곡 소리”(마태 2,18)가 그치지 않습니다.
사실 분쟁과 폭력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의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이래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 평화에 대한 염원과 희망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 간에 더는 전쟁이 없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미카 예언자도 같은 희망을 간직하면서(미카 4,3 참조), 참된 평화를 이룩할 목자가 장차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미카 5,1-4 참조)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기대했던 참된 평화를 세상에 주시러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이는 그분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들의 노래에서도 드러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에 천사들이 노래했던 그 평화를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어 적개심의 장벽을 허물어버리심으로써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에페 2,14 참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철저히 힘의 논리에 의한 평화입니다. 힘으로 약자를 누르고, 무력으로 반대편을 제거해서 다른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평화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사랑의 논리에 의한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약자는 물론 죄인까지도 내치지 않고 감싸안는 사랑이며, 남의 목숨을 빼앗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에 기초한 평화는 어떤 경우든 상대를 존중하며, 설사 상대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도 배척하지 않고 서로 화합해서 사는 것, 곧 상생(相生)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참 빛으로 오신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한 세상(요한 1,10 참조)에서 그분이 주시는 참 평화가 자리 잡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구세주로 알아본 제자들이 먼저 당신의 평화를 실천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럼으로써 제자 공동체가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마태 5,14)처럼 평화의 산성(山城)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공동체는 온 백성의 호감을 얻을 정도로 서로 친교를 나누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사도 2,42-47 참조). 그런 모습이 우리 교회를 통해 계속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평화를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이 평화의 본보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매 미사에서 십자가와 부활로써 참 평화를 이루신 주님을 기억하는 우리는 평화의 장인(匠人)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하나 되어 그분의 마음을 우리 안에 간직해야(필리 2,5 참조)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처럼 자비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부드러운 말을 건네며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나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는 큰 변화의 씨앗이 됩니다.
올해 우리는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남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선종 800주년을 기념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 기도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는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2026년 주님 부활 대축일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