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발걸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스승을 잃은 슬픔과 세상의 불의에 대한 절망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에는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하는 ‘위대한 역전’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라는 희망의 선포였습니다.
1. 무덤의 돌을 굴려내는 용기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그들의 마음은 커다란 돌덩이로 막힌 것처럼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막은 그 큰 돌을 누가 치워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무덤의 돌을 옆으로 굴려내자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두려워 떨며 까무러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진심으로 찾았던 여인들에게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5)라고 위로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나 혼자서는 도저히 치우기 어려운 ‘마음의 돌’이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오해받았을 때의 노여움, 터무니없는 처우를 받았을 때의 황당함, 급변하는 상황에서의 경제적인 불안, 가족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 등과 같은 개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힘의 논리만 남은 국가 위기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일부 지도자들의 이기심, 경제적 양극화로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무력감, 가짜뉴스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한 채 일방적인 주장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어리석음 등과 같은 사회적인 돌들도 있습니다. 부활은 이러한 돌들을 치우고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여 걸어 나오는 용기입니다. 우리 시대의 상실과 아픔을 직시하고 그 곁을 굳건히 지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무덤의 돌을 굴려내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를 짓누르는 걱정들을 주님 무덤 앞에 내려놓읍시다. 주님께서 “두려워 말라”(마태 28,10 참조)라며 우리 손을 기꺼이 잡아 주실 것입니다.
2.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
오늘 복음에서 천사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예수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약속,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4 참조)라고 하신 약속을 부활을 통해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삶이 막막할 때 세상의 화려한 말들에 귀 기울이기보다, 우리 곁에 놓인 성경 말씀을 펼쳐보십시오. 주님은 당신 삶으로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실천하셨습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위로를, 굶주리는 이들에게는 나눔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류에게는 당신의 부활로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은 우리에게 변치 않는 희망으로 삶의 용기를 주시고 모든 방식으로 우리 곁에 살아계십니다.
3. 가장 낮은 곳, 갈릴래아로 가라는 초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건네신 첫 마디는 “평안하냐?”(마태 28,9)였고 이어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 참조)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필 갈릴래아입니까?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잡던 삶의 터전이자, 하루하루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이들과 아픈 이들이 모여 살던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예루살렘의 권좌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 섞인 삶의 현장으로 먼저 가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국정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민생의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단순히 돈 문제를 넘어 사람들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게 만듭니다. 작은 말에도 쉬이 상처받고 주변보다는 자신을 챙기는 데 급급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 한 자락 내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과 장애인, 취업 준비로 지쳐가는 자녀들, 은퇴 이후에도 구직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하소연할 수조차 없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사회적 참사로 눈물 흘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재능 나눔, 이웃을 향한 작은 관심 등이 바로 우리가 갈릴래아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4. 부활은 “함께 걷는 여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안부를 물으며 챙길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삶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이로써 세상의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납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갈릴래아로 가고 계십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더 낮은 곳으로 더 소외된 곳으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여정 끝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환한 미소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함께 기뻐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시몬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