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알렐루야, 알렐루야!”(시편 118,24)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돌무덤의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도 부활의 은총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알렐루야.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에 살던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 그리고 오빠 라자로를 친구처럼 대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자로가 병을 앓다 죽게 되었고,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을 때 예수님은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하며 죽음 앞에 무력함을 고백하던 이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하고 말씀하시며 라자로를 소생시키셨습니다. 이후 라자로가 얼마를 더 살았는지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분명 라자로는 예수님을 공경하며 따르다가 결국 육신의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가 건강히 오래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원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7)
부활 대축일의 복음은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빈 무덤’ 안에서 수의로 쓴 아마포와 잘 개켜진 얼굴을 쌌던 수건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을 믿었다고 전해 줍니다. 이후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39-40)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에게 “이리 나와라.”라고 명하심으로 소생시키셨다면, 하느님께서는 돌무덤에 묻힌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시어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 부활을 처음으로 드러낸 표징입니다. 그런데 라자로와 예수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라자로가 얻은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잠시 연장된 소생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모두가 간절히 염원한 영원한 생명, 구원의 완성이었다는 점입니다.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안타깝게도 우리는 불안한 세계 정세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테러와 전쟁, 자연 재해와 기근, 각종 사건과 사고 소식은 우리의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연일 세계평화를 말씀하시며, “하느님을 부르는 자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감히 죽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려 쓰려한다. 그러나 신은 어둠의 편에 서실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대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통해서 부활의 영생을 선물로 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인간의 바람이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부활의 희망으로 우리는 현세의 고통을 극복할 힘과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감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이르십니다.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재회 장소로 지목하신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바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공생활의 주무대였습니다. 그곳에서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2)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어 잔치의 기쁨을 더하시는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산상설교(마태 5-7장)를 통하여 참 행복을 전파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제자들, 메시아를 바라던 백성들 사이에 사랑이 시작되고 꽃을 피운 장소였습니다. 하느님과의 만남과 영적 체험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매 주일 말씀을 듣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바로 이 성당이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생활관, 각자의 가정, 또 주특기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자리가 바로 우리의 갈릴래아입니다. 그곳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2026년 부활 메시지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당신의 부활을 드러내는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곳에서 주변의 지친 이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건넬 때 우리 또한 영적 기쁨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의 파수꾼으로서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군인이 됩시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선행이 결실을 맺기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부활의 빛과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주하는 각자의 갈릴래아에서 늘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군인이 될 것을 다짐하며, 서로를 격려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이 전후방 각지에서 수고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부활절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