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령성월을 맞아 15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성당에서 열린 죽음체험 프로그램에서 박희중 주임신부가 입관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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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커다란 관 뚜껑이 덮였다. 숨 막힐 듯 캄캄한 어둠 속에 눈을 뜬 채 몸을 뉘었다. 이것이 죽음인가? 눈 앞에 놓인 작은 관에 들어가는 것도 거북한데,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머릿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용서`와 `사랑`. 나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용서를 구하고, 미처 사랑을 전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금이라도 관 뚜껑을 열고 달려나가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달 11월. 주님 품으로 돌아간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에 앞서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고자 15일 인천 송도국제도시본당(주임 박희중 신부)이 마련한 죽음체험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했다.
#5분간의 죽음
성당 소성전. 죽음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신자 100여 명이 제대 앞에 놓인 관을 바라보며 연도를 바친다. 구슬픈 가락이 흐르는 가운데 무거운 마음으로 영정 거울 앞에 섰다. 내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날 `내 탓이오`를 말하기보다 타인의 가슴을 더 때렸던 자신을 반성했다.
봉사자 인도로 관에 들어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십자성호를 그었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세상을 떠날 때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당 연령회 구만서(프란치스코) 회장이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우리가 죽을 때 이름 석 자와 자신의 죄, 딱 두 가지만 갖고 갑니다. 오늘 죽음은 온갖 핑계로 주님 안에 살지 못했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느끼게 해줄 겁니다."
5분 후, 관 뚜껑이 열리고 빛이 스며들어왔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이브의 코에 숨을 불어넣어 주시며 "참 좋았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다시 생명을 얻었구나!` 십자가상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갔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에 자신을 내어놓으신 예수님. 죽음을 공포로만 여기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당신의 죽음은 무한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도 후 예수 그리스도의 피맺힌 발등에 입을 맞췄다.
#죽음은 새 생명으로 나아가는 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한다. 질병에 시달리고, 슬픔과 좌절을 겪으며 죽음과 비슷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자신이 목표로 한 것을 얻고자 살면서 부와 명예를 좇는다. 뜻대로 일이 풀리면 나의 업적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을 탓한다. 삶의 주인을 `하느님`이 아닌 `나`로 뒀기 때문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루카 6,20). 구 회장은 "하느님 나라는 결코 죽어야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삶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느끼고 그 안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 곧 하느님 나라"라면서 "죽음을 통해 희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주는 희망의 길임을 증명하셨다"고 말했다. 평소 미사강론에서 쉽게 접하던 그 말이 더욱 와 닿았다.
#용서와 감사
이날 죽음체험에 동참한 신자들은 하나같이 관 속에서 `평온함`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신자의 입관체험이 이뤄지는 동안 각자 작성한 유언장에는 주님 앞에 한없이 부족했던 삶을 반성하고, 그제야 느낀 주님 사랑을 고백하는 글이 많았다. 이들은 벅찬 주님 사랑에 눈물을 훔치며, 프로그램 막바지에 거행된 자신의 장례미사에서 유언장을 봉헌했다.
신경숙(모니카)씨는 "오늘 죽음을 통해 오랫동안 미워했던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다"면서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미운 감정이 하느님 앞에 갈 때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사피엔시아(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는 "수도복을 입은 채 관에 누워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 혼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면서 "수도자로서 정체성을 되새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입관체험을 함께한 박희중 주임신부는 "관 속에서 주님의 따뜻한 품이 떠오르며 평온함을 느꼈다"면서 "우리가 언제든 주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다면 주님께서는 `그동안 고생 많았으니 이제 나와 함께 쉬자`라고 하시며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4-25)라고 하셨다. 죽음체험은 과분한 주님 사랑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성당 문을 나오니 길가 나무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정훈기자 sjunder@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