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광명 신부(가운데 꽃 들고 있는 사람)와 신자들이 용산 성직자묘역 손 에드워드 신부 묘소에서 고인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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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귀여워 맛있는 과자나 사탕을 줄 때, 그 아이가 기쁘게 받아준다면 우리는 흐뭇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인자한 사랑을 퍼주고 싶어 하신다. 즐겁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면 된다."
청주교구 청산본당 제2대 주임 고(故) 손 에드워드(1931~1972,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는 1967년 펴낸 저서 「조건없는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 제목처럼 아이같이 순수하고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했던 미국 출신의 손 신부를 그리워하는 신자들이 추운 겨울 칼바람을 뚫고 서울 용산 성직자묘역을 찾았다.
청산본당(주임 김용일 신부) 신자 등 20여 명은 손 신부 40주기(12월 21일)에 맞춰 12월 18일 서울 용산성당에서 김광명(원로사목) 신부 주례로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손 신부 묘역에서 안식을 기원했다. 김 신부는 당시 손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청산본당 출신 첫 번째 사제다.
손 신부에게 청산본당은 처음이자 마지막 본당이었다. 신자들은 손 신부가 보여줬던 따뜻한 마음을 평생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살아생전 신부님이 보여주신 마음 자체가 조건 없는 사랑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신자들 증언에 따르면, 손 신부는 좋은 것은 모두 남에게 베풀었다. 늘 남이 신던 신발을 신고, 자신은 신발 밑창이 뚫어져도 새 신을 사지 않았다. 1년 내내 신을 만한 신발이 한 켤레, 입을 만한 옷도 한 벌뿐이었다.
1960년대에는 어느 가난한 고3 학생에게 대학 등록금을 건네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구호식품을 나눠주고, 마을에 다리를 놓는 일에도 앞장섰다. 특히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에게 옥수수가루, 우유가루, 식용유, 밀가루, 도너츠 등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정금순(마리안나, 76, 청산본당)할머니는 "신부님은 먹을 게 없어 굶다시피 했던 사람들을 많이 먹여 살리셨다"며 "나도 `밀가루 신자`였는데 신부님께 항상 달라고만 했지 내가 드린 건 하나도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손 신부의 삶에 감동해 천주교에 입교한 김 신부는 이날 미사 강론에서 "낯선 타향에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을 것"이라며 "손 신부님은 말씀과 삶으로 신앙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김 신부는 또 "할머니들이 편찮다고 하면 항상 약을 챙겨주셨는데 `잡숫고 천주님 공경하면 틀림없이 낫습니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며 "먼 길 공소를 갔다 오실 때도 늘 웃으며 `고생했어요. 잘 갔다 와서 좋아요`하고 말하셨다"고 말했다.
손 신부는 1945년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입회한 뒤 1958년 사제품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와 청산본당 주임, 대건신학대(현 광주가톨릭대) 영적지도신부, 서강대 심리학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