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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5주일 (루카 5,1-11)

부르심과 따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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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 제자로 삼을 사람들을 부르신다. 부르심 받은 제자들은 스승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따르고 마침내 또 하나의 스승이 된다. 스승의 분신이 되는 셈이다.

 만일 스승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이 스승의 분신이 되지 못한다면 그는 더 이상 `스승의 제자`라고 불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스승들은 제자들을 선발할 때, 가능하면 똑똑하고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을 뽑으려 한다. 그래야 스승이 가르치는 그 모든 것을 잘 따라 하며 분신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께서 사람들을 불러 제자로 삼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그분은 조상들이 살아온 대로 그저 매일 호수에 나가 고기나 잡아서 하루하루 사는 이른바 `무지렁이` 어부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를 설명할 때, 흔히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사자성어를 들먹인다. 쪽이라는 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인데,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선별해 뽑으신 제자들 면면을 볼 때 걱정이 앞선다. 과연 그 제자들이 나중에 청출어람에 걸맞은 인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어부들에게 접근해 `사전 포석` 삼아 말씀하신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시고, 또 한술 더 떠서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하시며 제자들 역량을 단단히 믿어주려는 태세다.

 스승이 제자로 뽑으시기 위해 사람들을 시험하시기보다는 오히려 미리 제자가 될 사람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부르실 때 그가 제자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자임을 인정하고 믿어주시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그렇게 뽑으신 제자들에게 용기까지 불어넣어 주신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40).

 이처럼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당신이 부르시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적극 인정해주시고 믿어주시며 용기까지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다. 문제는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어떻게 스승의 분신이 돼 가는가다. 스승 예수께서는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이 뽑히는 순간부터 완전하고 완벽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선택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마태 7,17)고 하시면서 그들이 적어도 당신 제자가 되기에 절대 부적합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셨을 것이다. 그러한 스승의 배려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들은 결국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1).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의 판단으로 볼 때 그리 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제자가 스승이 부른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겠는가. 대개 스승의 것은 스승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기에 배우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은 별개로 삼는 것이 오늘날 풍토가 아니던가.

 그런데 제자들은 스승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갔다. `모든 것` 안에는 가족과 일가친척, 재산과 직업, 권력과 학력과 명예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숨마저 포함된다. 그야말로 자신들의 온 생애를 스승께 맡긴다는 뜻이다. 마치 따름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유가 「명심보감」에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살게 되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죽게 된다는 말이다. 제자들 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승을 따르면 살게 되고, 스승을 등지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못하다는 진리를 그 순간 깨달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은 그분을 따랐다. 그러나 부르심과 따름 사이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조건이다. 이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라는 통념을 뛰어넘는 심각한 조건이다. 스승과 제자가 하나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규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당신과 온전히 하나가 될 것을 바라신다. 스승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당신을 사랑해 당신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기를(요한 15장 참조) 원하시는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역시 그분 제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 부르심에 어떤 태도로 응답하고 따르는가. 버리고 따르는가, 움켜쥐고 따르는가. 오늘 주일을 보내면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 태도로 그분을 따르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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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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