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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아이들에게 희망 가르치고 싶어

전남 장성 매남마을에 검정고시학원 준비 중인 나순식·이한익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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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순식씨가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마을 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자, 팔로우 미(follow me). 저를 따라 하시라는 뜻이에요. 아 엠 코리언, 유 아 어메리칸, 히 이스 제패니즈…"

 조용한 시골 마을인 전남 장성군 매남마을에 `꼬부랑 글씨`를 읽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년여성 10여 명이 매남마을 영어선생님 나순식(엘리사벳, 61)씨 선창을 따라 영어 밑에 달린 한글 토씨를 큰 소리로 읽었다.

 영어 교실은 나순식ㆍ이한익(안드레아, 61)씨 부부 집. 나씨가 지난해 12월 무료 영어강습을 시작하면서 교실 겸 사랑방이 됐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쳐 온 나씨는 난생 처음 영어를 배우는 이들에게 ABC부터 가르쳤다. 이날 수업은 미국민요 `클레멘타인`을 부르는 것으로 끝났다.

 지수남(54)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농사를 짓고 식품공장을 운영했다"며 "늘 마음속에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나 선생님 덕분에 소원을 풀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여자축구선수 차연희씨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는 "아들딸이 응원해 준다"며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대학에 진학해 식품가공학을 깊이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 역시 "뒤늦게 배운 공부에 재미가 붙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이들 부부가 매남마을에 거처를 마련한 것은 2009년이다. 하지만 아주머니들 영어교실 운영이 주 목적은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ㆍ피해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겠다는 남편 이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현재 서울 마포경찰서 수사과장인 이씨는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전부터 관련 사건들을 자주 접했다. 그 중에서도 한 학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급우를 괴롭히다 살해한 사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사건을 통해 학교폭력이 어떤 범죄보다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며 "청소년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교사들조차 방치 아닌 방치를 하는 것을 보고, 제도권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들을 법의 잣대로 보면 범죄자와 피해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가해자는 리더십을, 피해자는 예술적 섬세함을 갖춘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그들에게 `낙인`을 찍는다면 양쪽 모두 황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그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씨도 학창시절에 몸이 약하고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따돌림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설상가상이라고, 갑작스런 사고로 부모님마저 잃고 절망에 빠진 저를 한 수녀님께서 사랑으로 보살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세상과 맞설 힘을 얻었죠. 언젠가는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결심 끝에 이씨는 휴양지로 유명한 축령산 자락 매남마을에 작은 부지를 구입해 건물을 지었다. 청소년과 그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작은 기숙사도 마련했다. 청소년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청소년지도사와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최근에는 검정고시학원 인가도 받았다. 영어는 나씨가 맡고,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기간 학생들을 지도해온 나순식씨의 세 오빠는 국어ㆍ수학ㆍ사회 과목을 지도할 예정이다. 전문 상담치료사와 의료진까지 섭외를 마쳤다.

 이들 부부는 올해부터 입학생을 모집해 매년 4, 8월에 있는 검정고시에 대비할 예정이다. 교육비는 형편에 따라 받을 계획이다. 이씨는 "아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세상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문의 : 061-393-6777

김은아 기자 euna@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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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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