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숙자씨가 파마기구를 머리에 쓰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고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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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동대문성당 지하 회합실에 꾸며놓은 10㎡ 남짓한 미용실. 미용 봉사자들이 파마를 하기 위해 다소곳이 앉아있는 할머니들 머리카락을 부지런히 매만지고 있었다. 옆방에서는 할머니 대여섯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대문본당(주임 김현덕 신부)에는 매달 첫째 주일과 마지막 주일이면 어르신들 머리를 무료로 손질해 주는 작은 미용실이 문을 연다. 첫째 주일은 할머니들, 마지막 주일은 할아버지들이 손님이다. 1997년 시작된 본당 어르신 미용봉사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문을 여는 아침 10시부터 늦은 오후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할머니들 미용은 본당 마리아회(회장 최숙자) 회원 10여 명이 담당하고 할아버지들 이발은 올해 환갑인 이명남(다니엘)씨 혼자 하고 있다. 머리를 자르는 어르신이 하루에 20명을 넘나든다. 할머니들은 파마를 많이 한다.
어르신 미용 봉사는 본당 신자 최미선(스텔라)씨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1990년대만 해도 본당 관할 구역에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았다. 어르신들에게는 미용실 가는 것도 여간 부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최씨는 미용업을 하는 신자들을 서울 각지에서 수소문해 마리아회를 만들었다. 본당 신자 회원들은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어르신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5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찾아왔다. 초창기에는 마리아회 회원이 20명이 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료로 파마를 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생활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어르신들까지 몰려든 것이다. 나이를 제한하고 본당에서 가정 형편을 조사해 이용 가능한 어르신을 선별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됐다.
현재는 미용사 4명을 비롯해 10명이 마리아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마리아회를 만든 최미선씨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쉬고 있다. 최숙자(폴리나) 회장은 "할머니들이 예쁘게 머리를 하고 활짝 웃으실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7년째 봉사를 하고 있는 김옥자(마리아)씨는 "어르신들이 머리를 손질하고 기쁜 표정으로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돈을 많이 번 기분이 든다"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날까지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파마를 한 이성례(마리아, 84) 할머니는 "봉사자들이 솜씨도 좋고 친절한테 돈도 받지 않으니 고마울 뿐"이라며 "성당에서 머리를 한 다음부터 다른 미용실서 머리를 자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기남(데레사, 84) 할머니는 "할머니들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